#17. 금호동 태양빌라 402호

살던 집 시리즈 열일곱 번째 금호동

by 조은미

공학도였는데 졸업 후 신학생이 된 남편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강도사로 일했다. 그러나 목사 안수식을 일주일 앞두고서 남편은 안수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을 했다. '거꾸로 사는 삶'이라는 책을 읽은 뒤 깊은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목사가 되면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힘들 것 같다고 내게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목사가 되려다 갑자기 멈추어 다른 방향을 찾자니 정말 막막했는데, 사정을 잘 아는 둘째 시숙이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셨다. 아동 수제화 제작과 판매로 창업하신 형님은 남편에게 일감을 주었고, 감사하게도 남편과 함께하며 형님의 사업도 번창했다. 낯설고 고된 일을 하며 화곡동에서 출퇴근을 하던 중에 곰팡이 문제가 생긴 터라 구두 공장과 매장이 가까운 금호동에서 집을 보기로 했다. 방이 셋이나 되고 거실도 넓은 아름다운 집을 찾았다. 볕 잘 드는 큰 집이었다. 어린아이 셋과 함께 오르내리기에는 쉽지 않은 4층이라는 것과 기름보일러여서 난방비가 부담되는 단점이 있지만 우리는 결혼 후 가장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막냇동생의 결혼으로 혼자 계신 친정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거실과 부엌이 따로 있고, 방을 뺀 바닥 전체가 큼직한 흰색 타일이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난방을 살짝 줄여도 타일이 온기를 머금고 있었고 청소도 쉬웠다. 다만 혹시나 아이들이 넘어지면 다칠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쓰였는데 거실에 널찍한 카펫을 깔고 나니 괜찮았다. 이태원 중고가구에서 푸른 천으로 된 아담한 소파를 사서 배치했다.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4층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그렇고 또 어차피 언덕배기 집 근처에는 놀이터도 없어서 우리는 거의 매일 집에 만 있었는데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층이라 옥상을 쓰기가 만만해서 좋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옥상을 좋아했고 옥상에 오를 때마다 나도 따라 올라갔다. 금호동 언덕 아래 골목들 사이사이로 집들이 촘촘히 보였다. 겨울에 눈 쌓인 옥상에서 세 아이들은 장갑 낀 조그마한 손으로 눈을 꾹꾹 눌러 모아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뿌리고 던지며 즐거워했다.


세 아이와 함께 종일 먹고, 치우고, 씻기고, 놀고, 책 읽고, 뒹굴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굴러가는 시절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이 고만 고만할 때 벌써 이런저런 기관에 보내기 시작한다지만 나는 아직 내 아이들을 세상과 나누는 게 아까웠다. 우리는 우리들만의 세상에서 충분히 행복했다. 셋 모두 초등학교 취학 전, 딱 한 해 동안만 유치원에 다녔다. 첫 아이는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보냈는데 그곳은 즐겁게 두어 시간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간식을 먹은 후 바로 하원한다. 간식은 엄마들이 돌아가며 준비했는데 내가 당번이 되면 나는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복도 창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장남은 항상 웃고 있었다. 놀이에 신나 있는 까불까불한 친구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간식으로 당근 케이크나 과자를 구워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금호동 태양빌라에서 처음으로 아래쪽에 오븐이 달린 검은색 가스레인지를 사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남편에게 오븐레인지를 포장했던 아주 큼직한 갈색 종이박스의 몇 군데에 창과 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단단한 종이 놀이집에 온 식구가 매달려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꾸며 놓으니 아이들은 들락거리며 잘도 놀았다. 결혼이 비교적 늦은 편이었던 나는 동창들에게서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을 많이 물려받았고 거실과 놀이방을 구별해 곳곳에 채워두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들은 때에 맞추어 잘 가지고 놀았고, 내가 무릎 위와 양 옆에 나란히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익어가고 있는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당근 케이크, 단호박 케이크의 빵내음을 맡으며 함께 보낸 그 시절이 생각난다.


금호동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태양빌라 402호에서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 또 왔다.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의 설렘은 추억으로 남기고 그 해 첫여름방학에 이사해야 하고 아들은 전학했다. 금호동 우리 집이 있던 곳은 이제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은근히 언덕진 추억의 골목길은 영영 사라졌다. 그러나 아침마다 옥상에 뛰어올라가 작은 산 중턱의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에게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던 순간, 뒤돌아 활짝 웃으며 작은 손을 흔들며 엄마에게 답해주던 큰 아들의 모습은 눈물 나도록 행복한 내 인생의 순간으로 영원히 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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