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단맛
승진, 승급, 진급.
직장인으로서 참 설레는 말입니다.
"아뇨, 전 그냥 천천히 진급하고 싶어요. 워라밸을 즐기고, 내 생활에 집중하는 게 더 좋습니다. 빨리 진급해 봐야 빨리 나가기밖에 더 하나요?"
맞는 말입니다. 사실 제가 늘 주장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 그런 마음가짐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근무기간 동안 아직 한 번도 승진의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승진은 4단계에 해당합니다. 존중(존경)의 욕구이죠. 매슬로우 기준에서 상당히 고차원의 욕구입니다. 생존, 안전, 사랑이란 더 근원적인 욕구가 채워져야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생존, 안전, 사랑 모두 최소한의 돈이 필요합니다. 금수저 거나 안빈낙도를 꿈꾸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 돈을 벌고, 앞선 욕구들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승진은 그런 직장에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욕구입니다. 승진을 통해서 존중과 존경, 능력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는 승진이 장난스럽게 묘사됩니다. 동기가 먼저 승진하거나 진급하면 와이프가 바가지를 긁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죠. 이전까지는 그냥 웃긴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씁쓸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12년, 2013년의 사기업 동기들은 이미 과장이 되었습니다(01화 대기업 갈래? 공공기관 갈래? (brunch.co.kr)). 과장이라니.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당연스러운 직위인데 참 부럽습니다.
반면, 저는 아직도 담당자입니다. 연차나 호봉은 올라가고 있지만 별도의 진급은 없었습니다. 업무는 다양하게 맡고 있지만 여전히 담당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저보다 6년 이상의 선배 중에도 승진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순서대로 기다린다면 최소 6년은 담당자입니다. 그 사이에 예전 동기들은 차장, 부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진급 체계가 다르다고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저랑 2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 입사를 하고, 빠르게 진급을 한 선배가 있습니다. 제가 입사를 한 2016년. 그 선배는 이전의 그 누구보다 빠르게 진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또 한 번 누구보다 빠르게 2번째 진급을 하였습니다. 같은 부서장급들보다 10살 이상 어립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하는 게 보입니다.
처음의 인정이 그 선배에게 큰 힘이 된 것이 보입니다. 인정과 승진은 업무에 대한 열의와 성과로 이어지고, 다시 인정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사관리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이어서 더욱 눈에 띕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인사적체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규모를 무한정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업무량은 늘어나도 보직자리가 늘어나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승진을 한다는 건 그곳에서 굉장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직장에 들어가기만 해도 인정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안에서 또 인정을 받았습니다. 승진은 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큰 보상이 됩니다.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단맛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달콤한 만큼 과도한 노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업무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상급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 부분은 분명 선택의 영역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글 앞머리에서 말씀드렸듯 제가 그렇습니다. 직장인의로서의 삶을 결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다짐한 부분입니다. 직장은 철저하게 이용만 하고자 합니다.
직장에서 5단계 욕구인 자아실현까지는 불가능합니다. 직장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은 직장을 나가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퇴직자들은 직장에 왜 그렇게까지 목을 매었는지 아쉬워합니다. "아, 조금만 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걸. 조금만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걸."이라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퇴직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직장과 관계없는 무언가에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보고 싶은 책을 보고, 쓰고 싶은 글을 쓰겠습니다.
지금까지 승진의 단맛을 보지 못했던 작가 For워커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