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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워커 Jan 22. 2024

직장인의 발작버튼

직장생활 쓴맛

입안 가득 차오르는 씁쓸한 맛은 직장생활 내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쓴맛의 시작 감정은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해?'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돌아보면 결국 그런 일까지 하고 있죠. 특히 싫어하는 일인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그야말로 발작이 시작됩니다.


Andrea Piacquadi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760790/


제가 쓴맛을 자주 느끼는 부분은 '의전'입니다. 


좋은 의미로, 혹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의전도 있을 겁니다. 직장에서 의전의 필요성은 생각보다 아주 높죠. 의전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만족을 줍니다. 상대의 만족이 높아진 만큼 타 부서나 회사와의 협의, 평가, 계약, 결재 등에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죠.


중요성을 알아도 제겐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 방면으로 뇌세포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다 생각해놓더라도 실제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전의 상황이 펼쳐지면 괜히 어리바리해지고 쓴맛을 많이 봅니다. 


제 첫 직장은 영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업무가 영업이자 의전이었죠. 수많은 고객들과 만남을 가져야만 했고 그게 곧 실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고객들은 거의 대표들이었고 누군가에게 의전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그들의 요청으로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회식이 참 많았습니다. 회식의 장소, 시간, 예약 확인은 가장 기본입니다. 그다음에는 참석자들의 의사를 물어봐야겠죠?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 여기까지는 딱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그런데 문제는 이후의 상황들입니다. 시작은 준비한 대로 할 수 있지만, 끝은 준비한 대로 풀려가지 않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시, 3시까지 술을 마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술 주문, 계산, 다른 장소로 이동, 집까지 보내기 등 모든 부분을 내가 확인해야 한다는 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규직원이라서, 막내라서 챙겨야 한다기에는 단 하나도 제게 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세미나도 자주 준비했습니다. 말이 세미나지 과정은 회식이랑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골프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장소, 시간, 예약을 합니다. 참석자들의 의사도 물어보고 동의도 받습니다. 자료도 만들고, 시나리오도 만듭니다. 여기까진 일입니다.


이외는 다 의전입니다. 고객들은 차를 타고 와서 차를 타고 가는 것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그 안의 모든 일(골프, 식사, 교육, 선물, 회식 등)들을 챙겨야 하죠. 나이 어린 고객도 많았습니다. 돈 많은 청년이 많더군요.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도 이때 참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때의 문화였고, 한 부서의 문화였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작이 잘못된 건지, 전 그때부터 직장에서 다른 누군가를 챙겨준다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의 의전을 좀 더 신경 쓰라고 하면 발작이 일어납니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의전 혹은 영업과 상당히 먼 업종과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이 속에서도 의전을 잘하는 사람은 확실히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확실히 못하는 게 보입니다. 아마도 저는 직장을 떠나는 그날까지 이 부분에서 자신감을 갖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런 일이 자주 있지 않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


누구에게나 직장생활의 쓴맛을 불러일으키는 자신만의 발작버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고 인상 쓰게 되는 발작버튼. 길고 긴 직장생활인데, 평생 안고 간다면 너무나도 힘에 부치게 됩니다. 답 없는 상황처럼 보여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들 지레 겁먹고 피하지만 업무도, 부서도 바꿀 수 있습니다. 안 해보셨다면 고통받기 전에 꼭 한 번 요청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정말 정말 안된다면 직장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너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마냥 피하기보다, 한 번은 더욱 깊게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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