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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로 Dec 01. 2022

살기 좋은 도시 멜버른이 괴로웠던 이유

멜버른의 부적응자

남미 여행을 다녀오고, 나는 영어에 대한 결핍을 채우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라오스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개발협력 분야에서도 국제기구에 관심이 커졌고, 다음 스텝으로  '국제기구 UNV, 해외대학원 진학' 목표를 세웠다. 라오스에서 본 환경들, 남미의 경험치가 당장 이 여정을 당장 가보고 싶게끔 자극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다른 기회를 찾으며 대학원 준비를 하거나 국제기구 진출 경로를 찾을 것 같아 선택의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을 돌이켜보면, 가야겠다는 이유가 명료해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설득한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을 안다. 당시에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목표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영어실력을 키우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울타리 없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인턴의 형태는 계약직이었기에 실업급여를 받은 후, 주 7일 카페 2군데를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많이 다퉜다. '취업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냐, 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느냐'라는 엄마의 이야기에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을 더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그런 여정을 밟은 분들을 봤는데 너무나도 멋졌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마와의 기나긴 이야기와 신부님과의 상담 등으로 조금씩 딸의 고집을 받아주셨다.


한국에서 4~5개월 간의 준비 여정이 끝나고, 나는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호주 중 선택지 중에 호주 멜버른으로 떠나게 되었다. 떠날 때는 한인식당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한 달 사이 집 구하랴, 은행 통장 만들랴, 시간은 흐르고 돈은 떨어져 가다 보니 생각보다 치열한 구직환경에 마음이 급해졌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 식당 2군데에서 우선 일하게 되었다.




멜버른은 살기 좋은 도시(The Ten Best Cities To Live In Around The World) 로 평가받는 도시라고 한다. 그만큼 살기 좋은 도시로 명성 높다. '지금 이 시기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 맞을까? ',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도피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땐,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경험을 해본다고 가볍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기존의 나는 계획적이고 일반적인 틀을 따르는 것이 편했기에, 27살에 워킹홀리데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 불안했다. 


떠날 때는 영어공부라는 명확한 공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터에서는 쓰는 영어가 한정적이었고 주거비 외에 공부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돈을 더 모으려면 투잡을 해야 했다. 한 가지 일을 하기엔, 넉넉한 생활이 부족한 터였다. 주기적인 언어교환 프로그램 참여, 워킹홀리데이 아르바이트 경험 등이 영어 실력을 늘려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영어공부가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어학연수를 가는 선택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 1일 출국 후, 일자리를 구했고 적응해나가던 어느 2월에 코로나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호주는 한국보다 코로나가 늦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무서운 속도로 도시의 락다운 시작되었다. 락다운은 나의 일과 생계에도 지장을 주었다. 1개의 한인식당에서는 일단 2주에서 한 달을 나오지 않을 것을 권유했고, 다른 식당은 시프트를 반으로 줄였다. 더 이상 호주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상황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했으나 2개월 만에 시작도 전에 생활을 마무리짓기로 결정했다. 생활을 정리하고 바로 한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락다운으로 비행기 운행이 멈춰진 상황이었다. 구매했던 타이항공은 결항되었고, 다음으로 구매했던 비행기는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구매했던 가루다항공은 탑승 3일 전에 외국인 입국이 전면 금지되어 비행기를 못 탔다. 모았던 돈을 비행기 티켓값에 다 쓰고, 한 달 동안 호주에서 락다운 생활을 시작했다. 락다운 생활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낸 지 한 달 만에, 대한항공 전세기가 생겨 평소보다 5배가 높은 가격으로 비행기를 구매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에서의 경험은 나의 부족함을 한 없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전의 나는 나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으나, 코로나라는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힘이 없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든든한 조직 속에 속하는 것이 그리워졌다. 내가 힘을 가질 때까지는 튼튼한 조직에 속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좋은 조직에 속하고 그 안에서 힘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두 가지를 인정하게 되었다.


첫째, 아직 울타리를 벗어나기엔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다. 울타리를 벗어난 삶은 더 큰 역량이 필요하지만, 나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둘째, 하고 싶은 것이 명료해진 순간부터 그 외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필요한 역량인 영어라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목적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타지는 외로웠다.


호주라는 장소로 떠났지만, 사는 곳만 달라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집과 아르바이트 장소만 전전했던 생활은 괴로웠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이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잘 읽고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행복일 텐데, 그런 요소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가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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