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술 적당히 마셔라.” 루카스가 쌤을 향해 말했다.
“진짜 얼마나 술을 먹었으면 온센 바닥에 취한 채 기절해 있냐.” 마이클이 덧붙였다.
“그니까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원준이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미친 거지.” 알렉스가 말했다.
“지금 웃으면서 말하지만 취한 상태로 온센 하는 거 위험한 거야.” 루카스는 웃음기 없이 말했다.
“진짜 다 벗고 있었어?” 쌤이 웃으며 물었다.
“어. 미친놈아. 우리가 너 맨몸을 들고 나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냐고.” 알렉스가 말했다.
마치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들이 한 번에 2층 소파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자 전원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제 쌤이 오전부터 고삐 풀린 사람처럼 술을 마시더니 결국 저녁에 온센에서 잠든 채 발견되었습니다.” 루카스가 공포하듯이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 안 하기로 했잖아.” 쌤이 루카스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엿이나 먹어. 이건 모두가 알아야 해.” 루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쌤은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났다.
“여러분. 나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본 거 같아. 쌤을 돕기 위해서라면 정말 모든 것을. 그니까 제발 모두들 쌤을 도와주세요.” 그는 갑자기 호소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어제저녁 쌤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마치 그것이 예전부터 예고되었지만 끝내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듯. 루카스의 말을 듣고 우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제 쌤이 발견되었을 때 완전 나체였다.” 원준이가 분위기를 녹이려 말했다. 키아나와 케인은 바보 같다며 피식 웃어 보였다.
“이제 그만해.” 쌤이 간청하듯 말했다.
아침의 공포(公布) 후 쌤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모두들 그를 찾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내게 샘이 어딨는지 아냐고 묻는 방식으로. 리타도 심각성을 재고하게 된 것인지 쌤을 붙잡고 재차 엄마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네가 직접 연락 안 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우리 엄마한테 말할 수밖에 없어.”
“알겠어. 이따 내가 할게.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쌤이 바람도 쐴 겸 혼자 장을 보러 가겠다 했다. 모두 극구 반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도 갈래.”라고 내가 말해버렸다.
숙소를 나와서 길을 건너 마트로 들어왔다.
“사실 어제 너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 나야.” 내가 말했다.
“진… 짜?” 그는 경악을 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응. 너 진짜 수건 한 장을 안 덮고 있더라.”
“젠장… 정말이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장난이지.”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내가 물었다.
“네가 좋은 시간 보내고 있다면.” 그가 답했다.
어제 리타가 한 말과 루카스가 한 말, 전부 진위를 따지고 싶었지만 또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왜 자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알코올을 섭취했는지에 대해서도 따지고 싶었지만 또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뻐끔거리기만 몇 번을 했다. 그가 자꾸 다가오는 게 거북해서 그와 분리되고 싶다가도 그가 측은해 그에게 가까이했다. 걸음을 좁혔다 넓히기만을 몇 번을 했다.
장본 물건들을 2층 부엌으로 들어 놓자마자 루카스가 검사라도 하듯이 장바구니를 샅샅이 뒤적거렸다.
“저녁거리를 왜 이렇게 많이 샀어?” 나는 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곧바로 1층 벤치로 내려왔다.
“루카스는 2일 숙박을 위해 1리터 간장을 샀으면서. 우리가 뭘 그렇게 많이 샀다고 뭐라 하지.” 내가 불만을 토로했다. 쌤은 그냥 웃기만 했다.
“오늘 아침에도 원준이랑 나랑 어제 먹다 남은 고기 구워 먹은 거 가지고 엄청 뭐라고 하고.”
“그러게. 그건 좀 심했어.”
“맨날 그런 취급을 받는 거야, 원준이는?” 자기가 계획이 다 있어서 일부러 남겨둔 고기를 왜 멋대로 구워 먹었냐고 아침부터 핍박을 주는 루카스였다. 먹는 걸로 사람을 민망하게 하다니, 최악이다.
“응. 주변사람들 다 힘들어해. 근데 그가 없으면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는 것도 맞아.” 그가 말했다. 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을 꽁 다물었다.
쌤의 폰이 진동했다.
“아..” 그의 탄식에서 그것이 그의 엄마에게 온 전화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리타와의 대화가 생각나서,
“받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Dui.” 언제나와 같이 짧고 굵은 응답.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핸드폰 넘어서는 높은 피치의 목소리. 몇 번의 대답이 오가고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뭐라셔?”
“이번에 졸업을 왜 안 하냐고 묻길래. 다음에 발표를 잘해서 졸업한다고 했어.”
“근데… 루카스가 그러던데. 너 졸업 발표 못한 거 아니라고. 진짜야?” 그의 두 눈이 상당히 흔들렸다.
“아… 그니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펀치라도 맞은 듯해 보였다. 그가 여태 내게 거짓말을 해온 것이라는 게 분명해지자 더 이상 그를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피로감이 덮쳐왔다. 경멸 어린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도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기 위해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 알아?” 그의 말에 돌아서서 그를 응시했다.
“네가 작년 말에… 올해 초 일본에 온다고 SNS에 올렸을 때, 그때 졸업을 앞두고 있었어. 그때 졸업을 했으면 바로 대만으로 돌아가서 군복무를 해야 했지. 너를 다시 만날 기회가 영원히 없어지는 거였어.” 나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월에 또 졸업이 다가올 때 나는 너에게 물었지.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너는 아무런 관계이고 싶지 않다고 했어.”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포기하는 게 맞았겠지… 싶다가도 네 말대로 우리가 조금만 더 오래 알게 되면 달라질까 하는 고뇌 사이에 갈가리 찢어진 밤들이 계속되었지. 냉정한 너를 볼 때면 내가 한 선택들이 다 헛수고일까 봐 고통스럽다가도 네가 한 번이라도 같이 웃어주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나를 위로하기도 했어. 끝끝내 못 가겠더라. 이번에도.”라는 말이 뱉어졌을 때 나는 애써 부정해 왔던 나의 자만함이 얼마나 잔인했을지 깨달았다. 그즈음 그가 우울한 이유가 할아버지의 죽음과 졸업 발표에의 차질이라고만 굳게 믿어왔던, 믿고 싶었던 나였기 때문이다.
“고작 여자 문제로 너의 학업, 너의 커리어, 너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한다고? 그것도 얼굴만 겨우 아는 사이였던?” 여태까지 그의 부모님이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 마이클의 말들이 무례하다고 느꼈던 것이 웃기게 느껴졌다.
“너는 늘 내가 고작 너의 이름정도만 알았다고 얘기하지만 너는 모를 거야. 그 수업 때 너의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네가 떠나고서도 자그맣게나 내게 공유된 너의 일상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의미였는데?”
“너의 긍정적인 에너지라면 나를 구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를 향한 측은함과 매정함을 동시에 느꼈다.
“틀렸어. 네가 나라고 생각한, 네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모습은 허울뿐이야. 다 허상이라고! 나는 널 도와줄 수 없고 너를 고칠 수 없어. 정신 좀 차려!”
“알아. 그래서 혼자만 바란 거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부모님도 속여가면서, 친구들에게 떳떳하지도 못해고 스스로에 대한 한심과 자멸감을 느껴가면서 어떤 선택들을 해야 했는지… 너는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그가 현관문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그의 마지막말이 내게는 이해를 바란다고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선택들과, 그런 ‘희생’을 요구한 적도 조금이라도 원한 적도 없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오롯이 본인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나에게 어떤 이해를 바라는 모습이 나는 불공평하다 느꼈다. 그리고 역시나 그가 나를 갈망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그의 비루함은 더욱 거칠게 나를 그로부터 밀어냈다.
몇 시간째 그를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모두는 내게 쌤의 행방을 물었다. 난 정말 그가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았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3층 테라스로 올라갔다. 저녁은 야외 바비큐. 쌤은 이미 숯에 불을 지피고 있었고 그 옆에서 케인과 리타는 야채를 손질하고 있었다. 원준이랑 알렉스는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고 마이클과 키아나는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스는 쌤 옆에 서서 불을 지피는 걸 도우면서 그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쌤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쌤이 자리 쪽으로 걸어오면 나는 불을 지피는 쪽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을 때에도 그가 시선에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 앉았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내 몫만 정리하고 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쌤이 또 혼자 모든 걸 감내하면서 정리하고 모습이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2층으로 내려오니 소파에 원준이가 앉아있었다. 나는 어제부터 틈만 나면 원준이랑 단 둘이 대화할 기회를 엿봤다. 원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원준이었다.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었어도, 사는 것이 괴롭고 취약해도 자신을 숨기려 하지도 발버둥 치며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본인으로 자리하는 원준가 보기 좋았다. 참기가 어렵다 느낄 때 다른 페르소나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자리가 불편해서 나가지 않겠다’ 말하는 그가 좋았다. 엄마가 초등학교 때 사준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가, 자꾸 흘러내리는 그의 안경이 좋았다.
“Hey.” 원준이가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뭐 하고 있어?” 내가 물었다.
“핸드폰 게임.” 그가 말했다.
“석사 마친 거 축하해.”
“고마워. 근데 이제 도쿄를 떠나게 될 거 같아서 아쉽네.”
“한국으로 돌아가?”
“아니, 한국에 돌아가면 군대 가야 하니까. 키아나 따라서 미국에 갈 거 같아.”
“미국에서 일하려고?” 리타가 합류하면서 말했다.
“응. 일단은 키아나 부모님 사업을 도와드리려고.”
“그렇구나. 리타는 계속 도쿄에 있을 거야?” 내가 물었다.
“아마도. 지금 회사가 일본에서 규모가 있는 IT회사이고 중국 회사들의 수요가 많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거든. 사실 엄청 착취당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짧은 시기에 성장하기엔 너무 좋은 거 같아. 너는?”
“첫 발판으로는 만족하고 있어. 내후년 정도에는 좀 더 실력을 쌓아서 미국 기업으로 옮기고 싶어. 그러면서 연봉도 올리고.”
언젠가부터 마이클도 합류해 있었다.
“나는 연구분야가 화학이었지만 기계학습을 적용시켜서 연구분야를 확장하려는 시도들을 많이 했었거든. 확실히 컴퓨터 공학 계열이 지금 배울 것도 성장할 기회도 많은 것 같아.” 원준이가 말했다.
자신의 분야에 진지하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쌤과 있을 때에는 항상 어딘가 궤도를 벗어난 대화뿐이었다. 한참을 현실감각 있는 이야기에 모두 열중하던 중,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루카스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하려 애썼다.
“쌤이 또 없어. 좀 전에. 나랑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감정이 조금 격해졌어.” 그는 겨우 숨을 쉬느라 끊어 말했다. 잠시 물을 마시러 간 사이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온센은 봤어?”
“응. 숙소 어디에도 없어.” 우리도 벌떡 일어나 그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로 숙소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신발도 없었다.
루카스가 급박하게 손전등을 들고 해변가로 뛰어 나갔다. 우리도 경황이 없이 그대로 뛰어 나갔다.
루카스가 뛰면서 말했다.
“쌤은 자기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을 숨기고 맞춰주려고 노력을 하는데 언제나 결과적으로는 짐이 되어있다고. 걱정거리뿐이고 경멸과 한심스러움의 대상일 뿐이라고.”
루카스는 엄청난 속도로 바다 근처로 뛰어가더니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외쳤다.
“쌤이 혼자 수영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이즈의 밤바다는 얼씬하는 어떤 영혼도 다 삼켜먹을 것 같이 시꺼맸다.
아무 경계도 다 허물어 버리는 그런 밤바다.
이 칠흑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자… 잠시만요..! 저, 저, 저기요…! 잠깐만요!”
입술과 머리가 따로따로 작동하면서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잠시만 기다려요. 저랑 얘기해 보면 안 될까요? 아니, 얘기해요! 자, 잠시만요”
오작동하는 입술에서 뱉어져 나온 말들을 내 귀가 다시 주워 담을 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는 낯선 이가 마포대교에서 목숨을 던지려는 장면을 목격한 기이한 저녁이었다.
내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 눈앞 이 사람이 정말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 일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는 거 아닐까?’ 그 생각에 온몸의 털이 스고 뇌세포 하나하나까지 정지되어 굳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한걸음을 디뎠다. 나의 인지척을 느꼈는지 난간을 간신히 잡고 있는 가녀린 손가락이 움찔했다.
‘내가 다가가는 게 오히려 그녀를 밀어버리는 걸지도 몰라. 어떡하지? 119에 전화를 해야 할까? 아니면 말로 설득을 해야 할까.’ 수천 가지의 생각이 이리저리 혼잡스럽게 엉켜갔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후드가 벗겨지고 그녀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당장이라도 바람에 몸을 실어버릴 거 같아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핸드폰으로 119를 눌러야 해. 행여 그녀가 떨어지라도 하면 나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죄, 죄송해요. 근데 우리 이야기해 봐요. 이야기로 풀어봐…”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또 헛소리가 입 밖으로 흘렀다. 등뒤에 손을 숨긴 채 119를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존재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는지 그녀는 나에게 멀어지는 몸짓을 하다가 그만 난간에서 중심을 잃고 발을 허공에 내려버렸다. 나는 정신을 잃은 채 주변을 돌아봤다. 시공간이 중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들리는 건 나의 불규칙적인 호흡과 터질듯한 심장박동. 그 무거운 침묵의 압력을 뚫고 구급차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흔들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구급 대원들이 엄청난 속도로 차에서 뛰어나와 난간에 밧줄을 묶고 바로 한강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았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뒤로 한 남성이 나머지 대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어버버 하는 동안 그가 119에 신고를 한 거라 이해했다.
‘내가 이기적인 생각을 해서 결국 이런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게 된 걸까.’
‘정녕 그녀를 위했더라면 내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결과일 수 있었을까.’
‘사람의 생사 앞에서 본인 트라우마 걱정만 하다니. 뼛속까지 이기적인 년.’
그런 생각들을 되뇌며 그 현장에서 멀어졌다. 그 현장은 마치 한 장의 흑백 사진처럼 느껴졌다. 나는 원래 그 사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돌아가는 마포대교에서 계속 마주해야 했던 지독하게 새카맣고 고요해서 포근하기까지 했던 한강.
모든 이들의 걱정, 근심 그리고 희망까지 다 삼킬듯한 마력. 나를 부르기도 할까 두려움에 떨며 대교의 끝으로 추하게 도망가던 나의 모습을 나는 오늘 다시금 떠올려야 했다.
나는 그날 밤처럼,
쌤보다도 쌤이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 정녕 나일까 라는 생각.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 아니, 그들이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서로에게 짊어지게 하는 그 짐일 거야. 아니, 그의 인격이 분열될 지경으로 방치되었던 그의 청소년기일 거야. 아니, 본인을 망가뜨린 스스로일 거야. 나는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또다시 같은 비극을 목격하는 트라우마는 절대 없어야. 쌤은 무조건 돌아와야. 또 그런 이기적인 공포에 이즈 밤바다를 미친 듯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