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enough 의 저주
세상만사, 사물, 제품, 사람에는 등급이 있다.
심지어 내가 영위하는 시간에도 등급이 있다. 가령 시간이 아깝다는 소감이 드는 과거 행위는 당연히 등급이 낮은 시간이다.
기업만큼 등급에 민감한 집단도 없다.
숫자를 신봉한다 함이 사실 서열, 등급화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있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소기업의 일상 에피소드 웹드라마 '좋좋소'의 제목을 인용하여 규모가 작거나 체계가 없는 기업을 '좋좋소'라고 희화화해서 부른다.
내 짐작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체계와 기준 없이 운영되는 것을 비꼰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발음상의 B급 유머 정서도 녹아있는 듯하고.
좋좋소와 위대한 기업을 가르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매출, 영업이익 등 재무를 중심으로 한 수치부터 최근엔 퇴직률, 조직문화, 직원 만족도 등등 비재무적 수치 등으로 그 판단의 기준이 넓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 중견기업을 두루 경험해 본 입장에선, 사실 처우나 평판, 인지도 등에 영향을 받아서 해당 회사에 입사하는 사람들의 학력, 경력등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 물론 그 수준 차이는 경영진에서도 존재한다.
이 차이는 많은 경우에 돈에 의해 시작되는 건 사실이지만 얼마나 그 차이가 확대되고 유지되는가는 오히려 비재무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조직문화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처음 배웠던, 문화의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문화가 다양하여 상호 간에 존중해야 한다는 거지, 그 문화가 주는 결과의 우열이 없다는 건 아니다.(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럼 회사를 '좋좋소'가 되게 만드는 조직문화는 무엇일까?
"이만하면 됐다." (That's enough)라는 생각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정신건강, 회복, 위로에는 도움이 되지만 뭔가 개선하고 성장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조직문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조직문화는 묘하게도 이러한 조직문화에 맞는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고, 오래 근무하여 결국 조직의 주요 세력을 형성하는 사람들도 조직문화에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안분지족의 문화가 현상 유지조차도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조직은 좀 더 정확히는 조직 내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 듦은 인간의 정상적인 생애주기 상 많은 보상과 인간의 보상심리로 인해 지위-예하 조직과 부하 직원-를 원하게 되고 이는 결국 조직의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아무리 안분지족, 이만하면 됐다고 외치는 구성원들도 조직이 성장하여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만하면 됐다"는 조직문화는 조직의 지속과 영속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들도 확실하게 의사결정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 그리고 리더들이 먼저 솔선수범과 언행일치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현상유지형 조직문화 속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회사가 거덜 날 때까지 조직의 미래를 자신의 현재를 위한 불쏘시개와 장작으로 낭비한다. 한마디로 고인물들의 극한 이기심이다.
조직은 생명체와 같이 생존본능이 있다. 그 본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로 발현되고, 그 본능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조직 내 불협화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조직이 정체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악순환으로 혜택을 보는 세력은 기득권 세력일 수밖에 없다.
최악은 경영진도 이런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들 때이다.
이미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조직들은 자신들만의 성장 루틴과 관성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았고 직원들도 경쟁력 있는 역량과 자발성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진이 구체적인 근거 없이 단순히 善한 의지와 인기 영합주의에 기반하여 이런 조직에 어울리는 경영 방법과 리더십을 섣불리 적용하는 우(愚)를 범하게 되면, 이는 지출은 명확하나 그 지출의 목적지와 효과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최근의 다면평가와 무분별한 직원 우대 정책에 대한 경영진과 리더들의 불안증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보상을 능력 이상으로 잘해주면 직원들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와 같은 근거 없는 기대 같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며, 무임 승차자들만 양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