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플루타크 영웅전>의 누마 황제와 솔론이 이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기존에 형성된 체계(혹은 스테리오타입)를(을) 슬기롭게 조정시켰기 때문이다.
고대 이야기(혹은 신화) 속 인물들에 대한 가담항설(街談巷說)을 차치하고서라도, 현대국가의 경우에도 (다수가 으레 자연히 여기는) 각 국가의 특징들이 존재한다. 가령, ‘역사에 어떠한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할 때 영국을 언급하면 으레 다 맞다’라던가, ‘혁명을 일으키는데 전문인 나라는 프랑스’라던가, ‘미국과 영국은 문화적 언어적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기에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와 같은 일련의 스테리오타입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특징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연속적인 시간과 사건이 뒷받침됐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편, 1945년 이후 전지구적 체제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건 당사자로 지목할 때 ‘미국’을 언급하면 으레 다 맞아 들어가고 있고, 1945년 이후 혁명의 나라는 프랑스보다 소련(USSR)이 더 적확할 것이며, 미국과 영국의 밀월관계는 19세기말 상류층의 혼인관계로 인한 밀월관계 유지로 달성됐다 (그렇기에 미국 출신 어머니와 영국 출신 아버지를 둔 전시 거국내각 총리 윈스턴 처칠은 존재 자체로 양국의 우호의 상징과도 같다). 일국의 특징이라 꼬집은 고정관념(stereotype)들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국가 간 맺어지는 동맹의 성격과 역학은 더 다종다양할 것이다.
분명한 점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국가들의 동맹에 대한 인식이 냉전적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에서 점진적으로 탈각하고 있다. 냉전 당시의 우군과 적군 간의 관계를 완전히 탈피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냉전의 종식과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고 있는 세대는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다.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앞으로 두 세대는 족히 더 지나야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념으로’ 특정국가를 포장해 선량하다거나 악마화시키는 방식은 점진적으로 지양되고 있다. (‘역사의 종언’을 고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본인도 당시 자신이 세기말 감성에 취해 있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한편, 한국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냉전적 사고방식 속에서 아직 ‘헤어질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대다수에게 은은하게 남아있는 냉전적 사고방식의 잔재는 (특히 근래에 들어서면서) 어느새 한미일과 북중러의 블록화로 인한 마찰의 극성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요, 중간에 끼인 한반도에게 이러한 딜레마로 파생된 위기는 반드시 도래해야만 할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처럼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만 같다.
사담이지만, 한반도에 있었던 유구한 역사 속에서의 우리의 위상과 입장이 존재함에도 불구, 양차대전 이후 구축된 전지구적 체제에서 대한민국은 주권독립국가로서 양차대전의 승전국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국가였다.
"북중러 경제 블록화 우려…한미일, 세컨더리 보이콧 대응 필요" - <연합뉴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냉전의 시작과 함께 주권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얻은 대한민국이기에, 양자택일의 이념적 선택과 주권의 사수에 대한 애수(哀愁)와 헤어지기 위해서는 용단(勇斷)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완전한 자주성을 가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향수병’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동맹도, 통일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론해 본다.
변화는 어느 기점을 통과하는 순간 상이해지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 잔잔히 녹아 있는 채 어느새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위정치(Low Politics) 뿐만 아니라, 상위정치(High Politics)에서 복합적으로 다뤄져야만 할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복합적 접근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여지껏 달성되지 못했는 것만 같다. 하위정치의 경우, 완전한 자주성이라는 이름 속의 민족주의 형성과 함께, 한반도 밖에 있던 1990년대 북방외교의 흐름에 중용됐던 조선족과, 1990년대 북한보다 먼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송환받기 위해 한국정부가 구애했던 고려인들은, 별거하는 사돈에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다수에게) 사돈의 팔촌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상위정치도 마찬가지다. 역대 어느 한국 대통령도 (다수가 은연중에 원하는) 패기로운 과거 굴욕과의 해우를 달성하지 못해 왔다. ‘한일 관계’란 문구의 행간에는 한미일 안보공동체를 원하는 미국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국내정치 속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안정적인 직업 보장을 통해 정책의 장기적 운용을 지향해야만 하는 정부부처는 집권기 별 부처의 향방으로 쪼개지고 있다.
한편, 미어샤이머 스스로가 중국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적극 수용해 마치 시카고보다 이곳이 자신의 지적 요람과도 같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향수병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도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일찍이 미어샤이머가 핵을 가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자, 주권을 수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 원용하기 훨씬 전부터, (제 아무리 장막 속의 불투명한 국가로 취급되는) 중국과 북한은 주권 수호와 생존을 ‘제1의 원칙’으로 삼아 핵무장에 박차를 가해왔다.
미국에 ‘불침하는 항공모함’이라는 안보 상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을 1950년대부터 인지해온 일본은 (한국을 제외한) 미일 동맹의 공고화를 희구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면 타성(惰性)에 적셔진 정체성 속의 한국은 앞으로 동맹을(나아가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접근을 취해야만 할까? 그대들은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미흡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읽은 문헌>
- Dominic Tierney. 2011. "Does Chain-Ganging Cause the Outbreak of War?"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55-2: 285-304.
- James D. Morrow. 1993. "Arms versus Allies: Tradeoffs in the Search for Security," International Organization 47: 207-34.
- Walt, Stephen, The Origins of Alliance (Cornell University Press, 1987). Ch. 2.
- 전재성. 2004. “동맹이론과 한국의 동맹정책,” 『국방연구』 47-2: 6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