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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못 대겠어요!

논문 어떻게 시작하는 거죠,,,

by 보라

논문, 어떻게 쓰지?

논문을 마주한 순간 막막했다. 지난 대학원 1년간 논문을 단 한 편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 논문 1편을 썼다. 그 논문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건'만을 만족하기 위한 글이었다. 졸업 논문은 4년간 학부에서 배운 내용과 기존의 연구(참고문헌)을 녹여서 16페이지 이상 적었어야 했다. 간신히 최소 조건을 맞춘 때는 마감시간 직전이었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4학년쯤 되면 16페이지 논문은 쉽게 쓸 줄 알았다. 학부 1학년 모두가 "글쓰기의 기초"라는 필수 교양 과목을 들었다. 신입생 때부터 학구적인 글을 쓰는 방법, 참고문헌을 올바르게 작성하는 방법 등 익혔다. 이때 배운 노하우로 4년간 여러 리포트를 썼다. 매번 마감시간인 23시 59분까지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덕분일까, 리포트 성적은 꽤 좋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대학 글쓰기 3년 했으니 16쪽 논문을 못 쓸까! 무지한 학부생의 오만이었다.


대학원에 온 뒤 매주 2-3편 이상의 논문을 읽었다. 인구학, 사회학, 보건학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읽은 덕분에 '내가 논문을 쓴다면 꼭! 이 부분은 해봐야지.'라고 마음 먹었던 부분을 쌓을 수 있었다. 서론에 이 연구가 지금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를 밝히는 문장, 본론에 데이터를 조금이나마 덜 딱딱하게 전하는 문장, 고찰에 앞으로 이 연구 분야가 더 탐색해볼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담은 문장을 모았다. 언젠가 이 문장을 쓸 날을 기다리며.


읽기는 쓰기와 다른 영역이었다. 쌓아둔 문장들이 무색하다고 느낄 때 깨달았다. '아, 이건 그간 써온 일기, 수필, SNS 포스트와는 전혀 다르다!' 논문은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풀어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논문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지 않으면 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증명해야했다.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인 [주제]가 없으니 구슬이 서 말이 있어도 꿰맬 수가 없었다.


글쓰기에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논문 작성 과정이 꼭 신사업 개발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시장을 잡고 싶다면, 현재 시장 상황과 이전 시장 성패 등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제서야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틈새시장을 발견할 수 있다. 논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이르기에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고,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부분은 어디이며, 내가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했다.


즉, 논문은 내 앞에 있던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이어가는 글임을 알았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니 선배들이 해준 조언들이 조금씩 이해됐다. 또, 석사를 시작하기 전에 읽었던 심채경 박사님의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서 읽었던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 내용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내 이야기(가설)에 관련된 지난 논의를 찾아보자.

- 좋은 레퍼런스를 찾기: 내 분야의 [메타분석] [리뷰] 차원의 논문들을 읽어가며 이전 논의의 개요를 파악한다. 그 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흐름을 가장 유사하게 구현한 논문을 [모델 페이퍼] 로 삼는다.

- 많은 이들과의 대화와 고민: [주제]를 찾기 위해 하나에만 골몰하다보면 막히는 순간이 온다. 여러 매체,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면 정체가 뚫리기도 한다.


2. 다량의 논문에서 논의의 역사를 정리하자.

내 앞의 선배들이 우리 분야의 깊이와 넓이를 어떻게 확장해갔는지 파악한다. 정말 많은 논문을 읽으면 어느 순간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한다. AI를 잘 활용하는 것도 역량이라고 한 선배들은 이 부분에서 google notebook lm을 추천했고, 그 덕분에 여러 논문의 흐름과 개요를 조금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3. 그 끝에 [내가 기여할 포인트]를 짚어내자.

시장 분석이 끝났다면 이제 내 강점을 들여다 볼 때다. 선배들이 남긴 혹은 아직 탐색하지 못한 연구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지를 고민한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도, 발걸음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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