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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05. 2022

공무원도 상처받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민원 상대가 어려운 이유

 나는 2년 반 동안의 일반행정 공무원 기간 중 1년 9개월은 동주민센터, 나머지 9개월은 구청 청소과에서 근무했다.


 첫 발령 시 업무분장이 동사무소의 '청소-민방위-재난' 담당이었고, 그 후 동사무소 민원대에서 1년 반정도 근무를 한 후에, 대표적인 구청의 민원 부서인 청소과에서 9개월동안 근무했으니 내 일반행정 경력의 대부분을 '민원'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내 성격의 맹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단언컨대 공무원이 힘든 이유 중에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민원'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게 들어간 일반행정직을 그만 두고 나온 가장 큰 이유 역시 '민원' 상대를 공직 생활 내내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그토록 공무원들이 '민원'이라는 존재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잦은 인사 이동과 제대로 된 인수인계의 부재


 공무원들은 일단 업무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의 성격을 가진다. 그 이유는 공무원들이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거나 무난무난한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청렴 유지와 부패 방지를 위한 '인사 이동'이 무려 2년이란 짧은 시간마다 한 번씩 행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행정직의 경우 발령 범위가 워낙 넓고 그 업무 간의 연관성도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인사 이동 시즌에 일반행정직 공무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나 역시도 신규 발령 3개월 만에 다른 주무관의 인사 발령 여파로 인해 기존 청소-민방위-재난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주민등록 민원대로 새로 업무분장을 받아 바로 다음날부터 하루에 수백 명씩 쏟아들어져오는 민원인들을 상대해야했다.


 몇 년의 공직 경험이 있어도 아예 처음 하는 분야의 일을 발령 첫 날부터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생판 모르는 자리에 발령이 났다고 하더라도, 민원인들에게 나란 존재란 그저 자신들의 일을 처리해줄 '의무'가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내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욕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가 변경되어 일처리가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면 마음의 여유가 있는 민원인들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눈 앞에서 허둥대는 나를 배려해주지만, 급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어딘가가 비뚤어진 민원인 같은 경우엔 왜 당신의 미숙함 때문에 내 시간을 손해봐야하냐는 식으로 불같이 화를 낸다.


 그들의 논리가 틀린 것이 없기 때문에 업무에 완벽히 적응하기 전 몇 달 간은 그 일방적인 모욕을 삭이고 견뎌내야한다. 발령난 당일에 누군가에게 전문적인 내용을 설명해주고 오류없는 정확한 일처리를 해줘야한다. 이 구조적인 모순은 공무원의 민원 상대를 더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다.


2. 잘못은 민원인이 해도 사과는 공무원이 한다


 2년 반동안 내가 민원인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매번 들었던 생각은 '하...내가 공무원이 아니라 일반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민원인과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민원인과 싸움이 벌어져서 설사 내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좋을 게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언성을 높이거나 비아냥거리는 민원인들에게 기계적으로 잘못했다는 태도를 보이며 그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공기관에 자주 출몰하여 시비를 거는 민원인일수록 민원인을 상대할 때 공무원들이 가지는 이 치명적인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등등하게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고, 인격적인 모욕을 해댄다.


 가끔은 저 사람은 정말 업무 처리가 필요해서 이 곳에서 진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심심하던 차에 어리광을 부리기 위해 이 곳에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까지도 한다.


 법령에 맞게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줘도, 온갖 친절을 베풀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줘도, '말투가 맘에 안든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고압적으로 행세한다...' 끝간 데 없는 거짓말과 과장을 동반한 민원 제기에 결국 고개를 숙이는 건 공무원이다.


 현대 사회는 잃을 게 많은 자가 화를 삭이는 게 당연시 되는 사회이지만,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매번 억울함을 억누르는 것이 누구에게나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3. 과도한 업무량과 무조건적인 친절 요구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맡은 일이 가볍고 많지 않으면 당연히 능률은 올라가고 상대방에 대한 태도도 자연스레 친절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감당 못할 업무 분장을 받고 매일 같이 감정 노동을 하다보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조차 짜증이 나고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 역시도 면직 직전에는 하도 많은 업무량과 하도 많은 민원 상대를 하다보니 친절하고 예의바른 민원인의 전화에도 신경질적인 말투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는게 내 스스로도 느껴졌다. 아마도 너무나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던 나머지 감정 조절 능력에 어느정도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지경이 되기 전에 더 빨리 그만두고 휴식을 취했어야했는데, 그 때 내 태도 때문에 불쾌함을 느꼈을 정상적인 민원인들에게 요새도 불쑥불쑥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공무원 조직은 일을 잘해도 보상받지 못하고, 일을 못해도 손해가 없으며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업무가 쏠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각 개인당 업무 분장의 격차가 매우 심하게 발생하는 조직이다.


 요즘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힘들게 들어온 직장을 얼마되지 않는 시간 안에 때려치고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데에는 이러한 공무원 사회 특유의 부조리함이 꽤 많은 이유를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일이 몰려' 매일 야근하는 공무원에게 '친절하고 정확한 민원 응대'를 요구하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가 업무 과다로 힘들어 할 때, 꼭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힘들어. 그러니까 힘든 거 아는데 조금만 더 신경써서 힘내서 해보자. 알겠지?"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가 났었다. 누군가는 민원 전화를 받지도 않는 최소한의 업무분장만 받고 6시 땡 치면 집으로 가고, 나는 사무실에 남아 민원 응대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을 꾸역꾸역 처리한다. 모두에게 고루 분배된 업무 분장과 합리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이 갖춰질 때, 우리 공무원들의 민원 응대 서비스도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4. 마치며


 지금까지 공무원의 민원 상대가 어려운 이유에 대한 몇 가지 내 주관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봤다.


 물론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예의 바르게 민원 요청을 했었고, 경우에 따라선 민원 해결에 거듭 감사함을 표시하는 민원인의 모습에 공무원으로서 뿌듯함을 느낄 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분명 방향성없는 인사이동과 일부 직원들에 대한 업무 몰빵, 그리고 공무원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전가, 민원인의 폭언과 욕설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민원 상대 공무원들에 대한 보호책 부재는 분명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웃는 얼굴로 민원을 신청하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찾아주고, 민원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민원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상황을 설명한다. 민원인은 우리의 민원 응대에 고마움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감정의 잔유물이 남지 않는 이상적인 모습이 우리가 일하는 공무원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 되기를 꿈꿔본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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