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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pr 10. 2022

젊은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

일반행정 시절의 일화 하나..ㅎ


 내가 2018년 동사무소에 처음 발령났을때 겪었던 정말 어이없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나는 첫 업무분장으로 동사무소의 '청소, 재난, 민방위' 자리를 맡았었다. 보통 동사무소의 청소 자리는 몸쓸 일이 많고 운전할 일이 많아 경험이 있으신 7~8급 주사님들이 많이 하는 자리였지만, 마땅히 그 자리를 맡 사람이 없었던 해당 동사무소의 사정으로 9급 신규인 내가 그 자리에 앉게된 것이다.


 처음엔 신규한테 무슨 이런 일을 맡기나 싶어 좀 짜증나긴 했었지만, 그래도 환경미화원분들이랑 출장나가서 재밌게 청소도 하고, 민원대랑 다르게 분리된 업무를 하니, 업무 독립성도 꽤 있어서 재밌게 일처리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서무가 내가 와서 조용히 한마디를 하는게 아닌가.


"주사님. 야근 좀 하세요."


 나는 처음엔 무슨 소린가해서, 네? 뭐라구요? 무슨 일 있어요?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서무가 한심하단 표정으로 선심쓰듯 그 이유를 알려줬는데, 그 이유가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가관이다.


"에효... 동장님이 oo이는 발령난지 얼마나 됐다고 야근 한번을 안하는지 아주 꼴뵈기 싫다고 주사님 없는데서 뭐라하시더라고요. 적당히 눈치보면서 야근 좀 해요."


"???"


 순간 나는 표정관리가 안됐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야근을 안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야근 달고 일을하면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니면서 힘든척 생색내는 것 같아서, 야근 안달고 조용히 혼자 남아 일처리하고 간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만큼 일처리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고, 결과적으로 업무처리에 미스가 있거나 하는 일도 발령 3달차인 당시까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동장'이란 분은, 그냥 업무 전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oo이라는 사람이 초과근무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만 보고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굉장히 개념없는 직원땜에 자기가 화가 난다는 식으로 혀를 끌끌 차며 내 뒷담화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내가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일처리를 한다는걸 알고 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실제로 야근을 했든 안했든 야근을 안한다고 인격모독성 뒷담화를 듣는게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직장이고 대화가 안통하는 최악의 관리자 밑에 있다고 하더라도 신규 직원을 위해서 그 누구라도 "아~ oo주사님 남아서 일 많이해요~ 동장님이 못보셨나보다.^^" 라고 가벼운 해명조차 못해주는 조직의 분위기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이런 부류의 에피소드들이 괜찮아질만하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뭔가 열심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이곳은 내가 있기엔,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년 지나지 않아 나는 결국 총무과에 사표를 던지고 그 곳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요새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어렵게 시험을 붙고, 1년도 안되는 시간만에 공직을 뛰쳐나간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이 조직에 대한 환멸이 동사무소에 있던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과 거의 유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잘리지 않는 조직의 특성, 그리고 그저 오~~~래 다니면 많은 월급을 받고 틀린 말을 해도 용납이 되는 조직의 분위기, 낮은 직급일수록 어렵고 고된 일을 몰빵시키는 군대와 같은 수직적 조직 문화... 이런것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평생직장'의 값어치가 많이 내려간 요즘 사회에서, 젊고 가능성있는 공무원들의 '공직 탈출 러시'는 점점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공직이라는 공간이 할줄 아는 게 시험치는 것밖에 없어 남아 있어야하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자아실현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희망찬 공간으로 조금이라도 바뀌어가기를 여전히 자리를 바꿔 공직에 남아 있는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바래본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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