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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22. 2022

잘 나가던 공무원 동기가 어느날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

겉모습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지 마

 2020년 가을, 내가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꿈꿔왔던 의원면직의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데에는 2018년 봄에 나와 함께 공직에 들어와, 2020년 가을에 역시 나와 함께 공직을 떠난 한 친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만약 내가 나보다 일주일 먼저 사직서를 내고 자유의 몸이 되어 훨훨 떠나간 그 친구를 공직에서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나는 의원면직 후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청 한 구석에 쭈그려앉아 "의원면직하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만 꾸며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을 낭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91년생이었고 성별도 나와 같은 남자였다. 술자리보다는 헬스나 영화 감상 같이 생산적인 취미활동을 좋아했던 그 친구는 나와 가치관이나 취미에서 많은 부분 겹쳤던 관계로, 남자가 많지 않은 지방직 공무원의 특성상 금세 나와 친해져 시보를 뗄 무렵쯤에는 서로 없어서는 안될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신규 때부터 확실히 친한 사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와 나의 성향이 모든 면에서 정확히 일치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 친구에게는 내게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엄청난 능력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트러블없이 잘 지내는 능력'이었다.


 흔히들 공무원이 진짜 진급을 하고 싶으면, 맨날 야근하면서 많은 양의 일을 끙끙대며 처리할 게 아니라, 상사가 부르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서 소위 '이쁨'받는 직원이 되어야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람들을 가리고, 누군가의 말에 쉽게 기분 상해하는 나와는 나르게 그 친구는 앞서 말한 상사와 동료들에게 '이쁨' 받기 좋은 모든 요소들을 신규 때부터 이미 다 갖추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남녀노소 누구를 만나든 즐겁게 대화했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상대방의 헛소리에도 매번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응대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부서 내에서 상사 및 동료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솔직한 마음으로 부럽기가 그지 없었다. 내가 발령 초기에 부서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무렵에는 그 친구의 능력이 정말 너무나도 부러워서 연기로나마 그 친구의 행동을 따라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0년의 어느날, 그 친구는 나에게 새올 메신저로 이렇게 한 마디를 남겼다.


"OO아, 나 사직서 제출했어. 3주 후에 처리된대."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는 별다른 답장 없이 바로 옆 부서에 있던 그 친구에게 찾아가 갑자기 뭔 재미없는 농담이냐고 장난스레 그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를 향해 돌아본 그 친구의 표정에는 단 1%의 장난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아 이 친구가 정말 직장을 그만두는구나..."


 회사를 그만두는 그 친구의 이유는 명확했다. 처음에 입직했을 때부터 이 곳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었고, 마침 지금 있는 부서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 역시 버티기 힘들 정도로 최악이고, 마침 지금 부서 내 업무분장도 자신에게 너무나도 몰빵되어 있어서 더 이상은 이 직장에 다닐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불면증으로 인해 제대로 잠을 못 이룬 지 어느새 1년이 넘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감이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가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친구와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으로 바라본 그 친구의 직장생활과 그 친구가 실제로 느꼈던 직장생활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꽤 긴 시간에 걸쳐 그 친구의 속마음을 다 듣고 났는데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직장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고 우리 동기 중에 가장 먼저 7급을 달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일 것 같았는데, 그렇게 공무원인 것이, 구청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렸던 친구가 가장 먼저 공직을 떠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업무 스트레스로 한동안 잠을 못이뤘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 친구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은 단 한 순간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친구와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 때부터, 함께 구청으로 발령이 난 최근까지 순간순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친구의 의원면직을 보면서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딱 하나였다.


 "너무나도 멀쩡해보이는 저들도 모두가 크고 작은 고통들 하나쯤은 마음 속에 품고 이 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또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을 결코 패배자나 실패자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렇게 멀쩡하고 바른 친구가 버티지 못할 직장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직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의 면직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정확히 일주일 만에 똑같은 방식으로 총무과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루하고 길었던 고민에 비하면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내 공무원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 친구의 면직이 퇴사에 대한 욕구로 이미 가득 차 있던 내 마음 속에 '불씨'를 탁 던져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막상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이 쉬운 걸 왜 진작에 안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면직 후 약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우여곡절 끝에 다른 직렬의 공무원이 되어 여전히 나라의 녹을 먹고 있다. 반대로 그 친구는 모아놓았던 돈으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다쳤었던 마음 속의 생채기를 조금씩 치유해가고 있다.


 별다른 트러블 없이 다니던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이 반드시 옳은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과감한 선택으로 사표를 던지고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역시 마냥 옳은 선택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친구나 나나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 나와 그 친구에게 다가올 미래가 어떠한 방향이든 따스하고 행복한 쪽으로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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