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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Apr 06. 2023

나의 손, 나의 이야기

난생처음 손 사진을 찍어 본 날


사람들의 손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의 손에 그려진 주름들은 아름드리나무의 나이테처럼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노인들의 울퉁불퉁한 주름투성이의 손을 볼 때 숭고함이 느껴지고,  그분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챌린지에서 오늘 묘사를 위해 제시된 사진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야무진 손 하나가 등장한다. 스탠드 하나 켜 놓은 양, 반쯤 어둑한 방안에 가지런히 손가락을 모은 손이 허공을 향해 뻗어있는 그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의 손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졌다. 일평생 내 눈앞에서 떠난 적이 없고, 매일 일을 찾아서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갖은 고생을 다하는 '나의 손'이지만, 생각해 보니 내 손을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괜히 호기심이 생겼다. 내 손을 이처럼 사진으로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그래서 약간의 어색함과 오글거림을 무시하고 생전 처음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내 손이 이렇게 생겼구나...

아닐 거라 외면해 왔지만 이렇게 보니까 오동통 몽당몽당한 영락없는 '엄마 손'이다.

지독한 오른손잡이라 무슨 일을 하든 오른손이 먼저 나가다 보니, 왼손 보다 오른손 손가락 마디가 더 굵어 보인다.


어릴 때부터 종이만 보면 색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그 옛날 모든 인쇄물을 수작업으로 만들어 낼 때, 7년 넘게 매주 교회의 주보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필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공책 정리를 열정적으로 하고,

수많은 데코레이션 작업을 하느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휘어져 있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손가락이 가늘고 쭈욱 뻗어서 어디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손이었는데, 이제는 마디가 굵어졌을 뿐 아니라 때로는 습진이 생기기도 하고, 겨울철엔 손톱 주변 껍질이 건조해져서 일어나기도 하는 바람에, 화장을 제대로 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나가는 날에도 괜히 옷자락 안으로 슬그머니 손을 감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쁘고 말고, 가늘고 아니고.. 그런 기준으로 말고, 오늘은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의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등 뒤로 다가 온 둘째 딸이 말을 걸었다.


"이거 엄마 손이에요?"

"그래, 엄마 손마디가 좀 굵어 보이지?"

"그러네요.."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항상 정직하게 사실만 말하는 우리 딸...


"이게 다 너네 키우느라 그런 거야. 너네 똥 치우고, 밥 해 먹이고... 알아?"

안다는 의미인지, 일단 입을 막고 싶은 건지... 뒤에서 목을 끌어안고 볼을 부비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사진 속의 손을 들여다보았더니... 감추고 싶던 내 손이 갑자기 대견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예전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내 손 안에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많은 이야기들, 내 삶의 역사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손으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면서 공동체를 위해 수고하면서 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기도하고...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느라 주름이 파이고 거칠어진 채로 지금 여기에 이른 내 손이 오늘따라 기특해 보이고, 심지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을 한 내 기특한 손을, 일부러 떠벌리고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옷자락에 살그머니 감추는 따위의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세상 쓸데없는 일 같던 '내 손 사진 찍어 보기'가 나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 느낌이다.

날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던 내 손과 훈훈한 화해를 맞게 해 주고

점점 나이 들어가고 빛을 잃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운 나 자신을 향해서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주할 마음을 갖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가면 지금보다 손가락은 더 휘어지고

주름은 깊어지고

피부의 탄력은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때도 나는 마른나무껍질 같은 내 손에서 일평생 차곡차곡 쌓은 수고와 사랑의 흔적을 읽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손의 변화를 수긍하게 하는 새로운 소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그때를 위해 지금 나에게 주신 이 귀한 시간을 더 감사하며 살고,

할 수 있도록 맡겨주신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손으로 하는 모든 수고의 가치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손이 나더러 참 많이 수고했고, 참 잘했다고 도닥여 줄 수 있는 삶을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살아가야겠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손 #사진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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