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기쁨 Mar 29. 2023

다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아닌 건 아니니까


이건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설거지를 개수대 안에 가득 쌓아둔 채로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다니...

집안을 엉망으로 해 놓고도 무릎 나온 바지에 점퍼 하나 걸치고 남편과 태연하게 산책을 나갈 수 있고, 나가서도 어지러운 집안일일랑은 새까맣게 다 잊고 편안하게 즐기고 올 수 있다니...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더 나아져가는 걸까, 아니면 더 나태해지는 걸까...




언젠가 내가 참 좋아하는 어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 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면에서는 나와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모든 집안일을 다 제쳐놓고 커피를 내려 책상 앞에 앉아 한 나절이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쌓아놓은 설거지와 집안일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공부에 집중이 되니? 먼저 치우고 싶지 않니?"

"언니는 그게 왜 신경이 쓰여요?"


그러게... 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그런 것이 무지하게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다.

아무리 바쁜 외출이 있어도 설거지를 완벽하게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나가기 위해 아침 기상 시간부터 미리 계산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허둥댈지라도 계획한 모든 일을 다 말끔히 해치우지 않고 나가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들어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있는 꼴이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나는 내 주변이 언제나 가지런히 정돈이 되어 있기를 원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 모든 아이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삼삼오오 연탄불 앞에 앉아 국자에 꿀과 달고나를 녹여 먹고, 뽑기를 하고 상품을 받는 그 재미난 광경을 항상 곁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왜,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저 일을 하면 내가 이뻐 보일까?'라는 기준을 자주 들이댔다.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워 보였고, 국자 위의 달고나는 미치도록 먹음직했으나 멀찌감치서 정신이 팔린 친구들을 한참 동안 기다릴지언정 내 친히 연탄불 앞에 주저앉는 일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고 있어도 그렇게 안 이쁘지는 않았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바로 집 앞에 있는 가게에 가서 두부 하나 사 오라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실 때도, 엄마는 방에서 한참을 미적거리는 나를 속 터져하셨다. 아무리 코 앞이라도 일단 나가자면 머리 빗고, 옷 갈아입고, 더운 여름에도 양말까지 챙겨 신고 나와야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나 깔끔하다, 정갈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것이 바로 '나'이고, '나'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인다면 나답지 않은 것이다.

그 기준을 따라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도 많이 변했다. 먼저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이 탓인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예전만큼 속도가 붙지 않고, 전에는 고민 없이 하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뭐든 하기 싫어진다. 심지어는 밥 한 끼 챙겨 먹는 것도 발가락 끝에서부터 온 에너지를 다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버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을 미뤄 놓을 때도 많고, 설거지를 한꺼번에 하는 일도 생기고,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이제 나의 삶에 빈번하게 일어 난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나는 더 이상 나답지 않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일까...

한동안은 그런 걱정 어린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나 자신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고, 더 이상 괜찮은 사람도, 이상적인 사람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생활도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뭔가 크게 문제가 생기거나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서서히 터득하게 된다. 설거지가 몇 시간 쌓여 있어도 결국은 그릇들은 때가 되면 깨끗하게 씻겨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니 순서만 조금 바꿔 책을 읽고, 커피를 먼저 마시고 앉아 있어도 괜찮고, 고작 남들의 시선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지면 집 앞 바닷가 산책 정도는 입던 옷에 외투 하나 걸치고 편안하게 다녀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살면 큰 일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참 좋은 점도 많다.

전에는 으레 집안일은 내가 빈틈없이 하는 것이고, 다른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하는 일이 내 성에 차지도 않아서 모든 일이 다 내 차지였지만, 이제 내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니 보다 못한 딸들과 남편도 언제부터인가 알아서 설거지도 하고 집안 정리도 하게 되었고, 도저히 나를 참을 수 없게 하던 그들의 허술한 뒷 마무리도 이제는 '중요한 일 아님'하고 넘어가게 되니 내 몸이 덜 피곤해서 좋다.


또 하나 좋은 것은 나 스스로에게 좀 느슨해지고 관대하진 결과로, 이해할 수 없어하던 타인들에 대해서도 관대해지고 그들의 나와 다른 기질이나 습관이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쌓아두고 하루 종일 책을 보고 앉았던 '이상한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그냥 그녀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이고 나니까 내 주변의 천태만상의 인간형을 가진 각양의 존재들의 각자 이유 있는 삶을 내 알량한 기준으로 재단하려 하지 않으니 내 정신이 덜 피곤하여 좋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하루를 쓸고 닦고 치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고, 설거지를 쌓아두기보다는 다 끝내고 커피 내리기를 더 선호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런 내가 이제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어떤 기준을 벗어나면 나답지 않다는 쓸모없는 강박에서 탈출한 기분이다.


비록 생활은 이전보다 느슨해졌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열심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책을 읽고, 커피를 좋아하며,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영원을 갈망하며 나다움을 상실하지 않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얼마든지 편하고 좋은 것을 왜 나는 여지껏 그렇게 피곤하게 살았나 모르겠다.

오늘도 봄날 오후에 창문을 넘어 들어온 볕이 반가워 점심 먹은 그릇이 어지러운 식탁에 그대로 글을 쓰고 앉았더니 그렇게 한가로울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울어져 사라져버릴 볕을 설거지와 맞바꾸고서 누리는 봄날의 호사...

이런 즐거움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니 남편이 약점 잡힐 때마다 자주하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좀 허술한 면도 있어야지.. 너무 완벽하면 매력 없잖아.”

그래, 이제 나도 그 매력적인 사람이 좀 돼 보면 어떨까…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괜찮아


 





이전 14화 버스도착 안내 어플이 먹통이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