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슬픔의 경계

by empty

사실은 우울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다. 당장 교통사고가 나도 나는 아무도 탓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고속도로에서 내가 홀라당 발라당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이더라도 나는 누구를 탓하지도 않을 것이고 유서랄 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감정은 한도 초과를 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당장 이 높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도 속이 후련하다고 느낄 정도로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고통 속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민하고 화가 많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내가 예민해 미쳐 날뛸 때마다 왜 자꾸 그러냐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되냐는 말로 부정당하거나 회피를 했다. 나는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나에게 input 되는 감정들이 나를 덜 예민하게 만들거나 혹은 예민하지 않게 만드는 것들이라면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input은 나를 예민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더 많다. 물론 이런 것들은 상대적인 감정이라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나에게 이런 input을 주었던 사람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 게 아닌데..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이기적인 말이지만 상처를 준 사람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해서 선택하는 선택지일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나에게 그랬던 사람을 매장시키거나 소문을 퍼뜨려 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게 만드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도 심하고 슬픔도, 우울도 심한 나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늘 목이 말랐다.


다들 나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해주지 못했고 무조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외면했다. 그리고 나를 손가락 질 하기까지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도 너 같은 사람은 못 만나보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예민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들을 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알게 되었으면 그런 감정들은 적어도 이야기를 했을 텐데 만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아, 이 사람은 정말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구나 하는 마음에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를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그런 식으로 이별통보를 할 것이었으면 애당초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됐다. 서로를 알아가기 전까지 그런 것들을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생각이 많아져서 그 실타래를 끊을 수 없는 사람이고 상처가 많아서 마음이 쉽게 닫히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해주고 이해해준다. 그리고 극한의 공감을 해주어서 이 사람이 정말 공감을 해주는 건지 아니면 흔하디 흔한 소개팅의 리액션인지 착각이 될 정도였다. 누구라도 본인이 관심 가는 사람한테 단점을 보여주고 싶어 하겠는가. 나도 한동안 단점을 보여주지 않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내가 가진 단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것을 다 숨기기에는 불가능이라고 여겼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살기에는 나의 단점들이 너무 많아서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아서 단점이든 장점이든 내 이야기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꺼내놓기 시작했다. 어디서 만났던 사람이든 간에 일단 이야기를 다 했다. 그러고 나서 결국 나에게 어느 정도의 사람들은 연민을 느끼고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영역으로 점차 들어오기 시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의 예민함은 항상 날이 서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라도 예민함이 늘 발동되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왜 그러냐라는 말부터 예민한 나를 몰아가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것에 나는 너무 질려버렸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않기 시작했고 믿지 않으니 나는 점점 더 폐쇄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글을 쓰니 내가 정말 심각하게 예민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나는 나의 예민함을 건드리지 않으면 굳이 나서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돋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소시오패스도 아니다. 나는 적당한 선의 장난과 적당한 선을 지키는 대화, 잔잔하고도 조용하고 아주 조심스럽고 비유하자면 아주 조신하고도 조용한 여자와의 소개팅 분위기를 좋아한다. 나는 결국 나의 단점을 부각하지 않고 이해하거나 흘려보내는 사람이라면 내 단점이 덜할 텐데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예민해지고 하루하루 짜증과 분노의 감정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일순간 지나고 나면 슬픔과 우울증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예민한 나에게는 분노라는 감정도, 우울증이라는 감정도 견디기 너무 힘든 감정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이 너무나도 무겁고 무섭다.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고 있다.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이 만났을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적어도 내 감정선이 어떤지는 알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속상하다. 짜증 난다. 화가 난다.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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