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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30. 2022

자존감 낮은 삼성의 와치 광고

자기 발등을 찍다

 검은색의 네모난 블록을 동그란 모양의 블록이 달려가서 때려 날려버리는 삼성 와치의 광고는 나름 신박하다. 하지만 결국 자신들 스스로가 애플보다 아래에 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광고 내용만 봐도 애플 와치가 없으면 자신들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셈이 되었으니까. 삼성 와치의 존재 이유가 애플 와치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자인한 꼴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자칭 '애플빠', 혹은 '앱등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름 콘셉트를 잡고 만든 광고이긴 하지만 화려하고 멋진 그래픽과는 달리 정작 내용은 화려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애플을 때려잡는 것'으로 결정해버렸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충분하게 가치가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처음 가져온 아이폰이 등장할 때만 해도 삼성은 그저 핸드폰이었다. 물론 삼성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폰이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뛰어난 기술력과 도전으로 지금의 삼성 스마트폰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은 정말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보통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느 정도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그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그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면 이룬 업적마저도 폄하된다. 단순하게 위의 삼성 광고 같은 행동을 어떤 사람이 했다면 어떨까?


 아주 간단한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동네에 치킨집이 있다고 하자. 그냥 그 치킨집의 치킨은 충분하게 맛있고, 훌륭하고, 이미 많은 단골 고객들도 있다. 그리고 바로 옆 동네에 새로운 치킨집이 들어왔다. 자기 매장의 손님과 옆에 생긴 매장의 손님들이 겹치지 않는다. 분명 같은 치킨이지만 튀기는 방식도 다르고 쏘쓰도 완전 다르다. 하지만 왠지 새로 들어온 치킨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치킨집 사장은 현수막을 하나 내걸었다. 

"옆 집 보다 더 오래전부터 장사한 더 맛있는 치킨집"

"옆 집 소스는 치킨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딱 느낌이 오지 않나? 그런 현수막을 걸어 놓은 치킨집에 가고 싶을까? 물론 정말 맛있다면 여전히 갈 것이다. 그 집 치킨 맛에 익숙한 단골들도 여전히 갈 것이다. 다만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는데 과연 현수막의 문구가 도움이 될까?


 어떤 배우가 연기상을 수상하는데, 다른 어떤 배우보다 내 연기가 뛰어난 것을 인정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면 과연 그 사람을 성공한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의 와치 광고는 기존의 삼성 유저들에게는 어느 정도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애플 유저가 저 광고를 보고 자괴감을 느끼고, 역시 시계는 둥근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삼성 유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 유저들이 저 광고를 보고, 삼성이 애플보다 한 수 위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할까?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성품에 내가 대신 부끄러워하겠다. 그렇다고 저 광고가 삼성 유저들이 애플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까? 그런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제법 한심하다.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쟁이 있고, 좀 보기 거북한 경쟁이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아왔다. 옆에 있는 친구의 답안지를 몰래 보거나,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서 시험을 치르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1등을 하겠다는 누군가가 연일 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1등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 미인 선발대회에서 그 누구도 마이크에 대고, 내가 저 35번 참가자보다 더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미에 대해서 뽐낼 뿐이지 다른 누군가보다 이쁘다거나 누군가보다 키가 크고 몸매가 더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비교 콤플렉스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말 추해진다.


 삼성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다른 경쟁사보다 훨씬 뛰어나!'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틀렸다. 난 비록 앱등이이지만 삼성의 제품도 사용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맥북이 아니며, 스마트폰도 애플과 삼성 제품 모두를 가지고 있다. 집에 여러 가지의 삼성 가전제품이 있다. 난 그 모든 것들이 충분하게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잘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는 비교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아쉬운지 말이다. 하지만 제조사가 그것을 스스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미인 선발대회에서 그 과정을 보는 심사위원이나 청중들은 누가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역할이니까. 하지만 대회 참가자들 스스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비교하는 순간 미인은 더 이상 미인이 아니게 된다.


 우리도 그렇게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옆집 누구는 무엇을 샀고, 어떻게 되었고, 누가 1등을 했고, 차종에 대해서 바라보면서 비교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고 못났다고 생각한다.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어떤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그래서는 안된다. 


 자신의 가치는 누구보다 더 나은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구보다 못하다고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 가치는 누군가 정하는 영역이 아니다. 심지어 나 스스로도 정할 필요가 없다. 한 인간의 가치라는 것이 어떻게 규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삼성의 광고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증명한 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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