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연료로 바꾸는 법
'열등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위축되는 기분이다. 그만큼 환영받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열등감은 조건과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전교 1등도 열등감을 느끼고, 완벽한 외모를 가진 사람도 열등감에 시달린다. 공부는 잘하지만 운동을 못한다거나, 얼굴은 예쁘지만 유머 감각이 없다거나.
'히든싱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델 같은 외모지만 음치인 사람, 반대로 외모도 스펙도 노래 실력까지 완벽한 '사기캐'들.
그런데 그들에게 열등감이 없을까? 아니다. 분명 각자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열등감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열등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열등감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도, 좌절의 늪이 될 수도 있다.
열등감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못났어"라는 자기 비하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라는 열망의 신호이기도 하다. 즉, 열등감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고등학교 때 충격적인 친구가 있었다. 전교 1등인데 IQ는 98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그는 머리가 나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남들이 한 번 볼 때 세 번 봤고, 남들이 잘 때 공부했다.
그의 열등감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의 '성장 마인드셋' 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능력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열등감에 무너지지만,
성장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열등감을 도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헬렌 켈러를 생각해 보자. 시각, 청각, 언어 장애라는 삼중고. 열등감의 극치에 있어야 할 사람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 않다."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어서 열등감을 못 느꼈을까? 아니다. 그녀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좌절과 분노, 열등감으로 가득한 순간들이 나온다.
다만 그녀는 열등감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삼켜 연료로 만들었다.
일본의 경영학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열등감은 향상심의 어머니"라고 했다.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면 성장할 이유도 없다.
열등감이 있다는 것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다. 중요한 건 선택이다.
열등감을 내가 무너지는 독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성장하는 약으로 쓸 것인가?
열등감에 잡아먹힐 것인가? 열등감을 잡아먹고 나아갈 것인가?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어릴 때 "흑인은 테니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열등감과 분노를 라켓에 실었고,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중퇴자라는 열등감을 혁신의 에너지로 바꿨다.
"기존 시스템에 속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오히려 다르게 생각할 자유를 줬다"라고 그는 말했다.
심리학자 수전 데이비드(Susan David)는 "감정은 데이터다"라고 한다. 열등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신호다. 무시하거나 억압할 게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다.
열등감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네가 성장할 영역이 있다."
"여기에 네가 도전할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열등감도 스펙이 될 수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억하자. 모든 열등감을 극복할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은 그냥 받아들이고 다른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열등감을 적이 아닌 동료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불편한 친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오늘도 열등감을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가?"
"이것을 어떻게 내 성장의 연료로 만들 수 있을까?"
열등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