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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07. 2022

열등감도 스펙이 된다

열등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열등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열등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환영할만한 그런 단어는 분명히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 열등감을 느끼게 될까? 나보다 잘난 누군가가 있을 때 열등감을 느낄까?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은 존재한다.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열등감이 있고, 얼굴이 완벽하게 잘생기고 예뻐도 열등감은 가지고 있다. 공부는 1등이지만 노래를 못한다거나, 얼굴이 훌륭하지만 공부를 못한다거나. 


 '히든싱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보면 더 격하게 공감하기도 한다. 정말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음치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일명 "사기캐"도 등장한다. 외모도 정말 훌륭하고 학업과 다른 스펙도 훌륭한데 노래까지 엄청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은 열등감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하게 스스로 부족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각자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면 열등감이 생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열등감의 정체가 조금 더 보이는 것 같다. 열등감은 "나는 못났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라는 의미도 된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이 열등감이다. 

 뭔가 되고 싶다는 것, 어떤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열등감이 열등감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겠다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열등감은 나에게 스펙이 된다.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로서의 스펙이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1등, 전교도 1등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지능검사(일명, 아이큐 검사)의 점수는 고작 98이었다.(믿기 어렵고 과장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다) 그 친구는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노력을 했다. 아이큐가 학업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증명했고, 자신의 부족함을 가지고 포기하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진 조건으로 열등감을 말하자면 헬렌 켈러는 열등감의 최고봉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그 사람이 위인이어서 뭔가 달랐을까? 덜 힘들고 덜 불편했을까? 그렇지 않다. 아니면 그녀는 뭔가 특별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열등감 따위는 아예 없었을까?  


 열등감을 내가 무너지고 망하는 재료로 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성장하는 좋은 재료로 쓸 것인가? 열등감을 잡아먹고 나아갈 것인가? 열등감에 잡혀 먹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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