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열등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열등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환영할만한 그런 단어는 분명히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 열등감을 느끼게 될까? 나보다 잘난 누군가가 있을 때 열등감을 느낄까?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은 존재한다. 학교에서 1등을 해도 열등감이 있고, 얼굴이 완벽하게 잘생기고 예뻐도 열등감은 가지고 있다. 공부는 1등이지만 노래를 못한다거나, 얼굴이 훌륭하지만 공부를 못한다거나.
'히든싱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보면 더 격하게 공감하기도 한다. 정말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음치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일명 "사기캐"도 등장한다. 외모도 정말 훌륭하고 학업과 다른 스펙도 훌륭한데 노래까지 엄청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은 열등감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하게 스스로 부족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각자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면 열등감이 생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열등감의 정체가 조금 더 보이는 것 같다. 열등감은 "나는 못났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라는 의미도 된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이 열등감이다.
뭔가 되고 싶다는 것, 어떤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열등감이 열등감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겠다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열등감은 나에게 스펙이 된다.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로서의 스펙이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1등, 전교도 1등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지능검사(일명, 아이큐 검사)의 점수는 고작 98이었다.(믿기 어렵고 과장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다) 그 친구는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노력을 했다. 아이큐가 학업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증명했고, 자신의 부족함을 가지고 포기하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진 조건으로 열등감을 말하자면 헬렌 켈러는 열등감의 최고봉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그 사람이 위인이어서 뭔가 달랐을까? 덜 힘들고 덜 불편했을까? 그렇지 않다. 아니면 그녀는 뭔가 특별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열등감 따위는 아예 없었을까?
열등감을 내가 무너지고 망하는 재료로 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성장하는 좋은 재료로 쓸 것인가? 열등감을 잡아먹고 나아갈 것인가? 열등감에 잡혀 먹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