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회사에서 업무 중 가장 딴생각이 많이 나는 시간이다. 기계적으로 도면을 치며 저녁메뉴에 대해 고민해 본다. 문득 2주 전 먹은 생참치가 아른거려 곧장 D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뭐 해?
별다른 일정 없어.
그럼 저번 거기 또 갈까? 그리고 아쉬운 귀가 어때.
오케이.
남은 업무시간과 서울숲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생참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건만, 수급하지 못했다는 슬픈 안내를 받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오늘의 추천 메뉴를 보자 대삼치가 눈에 들어온다.
D에게 말했다.
“아예 오늘은 삼치데이로. 어때?”
“음, 그것도 좋아.”
D가 특유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미소를 지었다.
여수 대삼치 사시미, 대삼치 훈연밥, 그리고 보리소츄 무기이찌를 주문했다.
오픈키친 덕에 삼치를 손질하는 직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인다. 나무도마 위에 올려진 거대한 삼치를 정교하게 손질하고 있는 모습에 푹 빠져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시선을 느낀 직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모든 생선은 익혔을 때 맛이 진해져요. 그래서 가장 기름진 뱃살은 사시미로, 솥밥은 등살로 해서 드릴 거예요.”
곧 대삼치 사시미가 나왔다. 푸른 접시 위로 토치로 껍질이 지져진 삼치 사시미와 채 썬 양파가 함께 올려져 있다. 삼치회를 폰즈소스에 푹 적셔 와사비와 양파를 올린 후 입안에 넣었다. 살과 껍질이 붙어있는 지방층에서 흘러나오는 감칠맛과 유자폰즈의 상큼한 산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얼음과 무기이찌가 들어있는 잔을 부딪히며 D에게 말했다.
“사실 오늘 입은 원피스, 오른쪽 옆구리가 살짝 찢어졌어. 포장 뜯을 때 칼로 옷이랑 포장지를 같이 그어버렸거든. 하지만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그냥 입고 있어.”
“그 마인드 너무 부러워.”
“찢어진 원피스 입는 게? 지금 내가 한 말도 뜬금없지만 네 대답도 뜬금없는 거 알아?”
“본인이 관심 있는 거 외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 마냥 신경 꺼 버리는 거. 원피스뿐만 아니라 모든 태도가 그래.”
“그건 맞아. 좀 과하지. 너는 정 반대 부분에서 과하고.”
“어떤 게 과한데?“
“관심 있는 분야에 집요한 거. 좀 변태 같을 정도로. 그래서 네 작품들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 “
”맞아, 그래서 피곤해. 덜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데. “
황금색 뚜껑으로 덮인 대삼치 훈연밥이 테이블에 놓였다. 뚜껑을 열자 은은한 훈연향이 공기를 스치며 안개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숟가락 위에 노른자 소스에 적셔진 고슬한 밥과 삼치를 올려 한 입에 넣었다. 층층이 쌓인 재료가 입 안에서 으깨어지며 고소한 풍미를 극대화시킨다. 단순한 덮밥이 아닌, 한입 한입이 입안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이다.
D가 감탄하며 말했다.
“삼치로 이런 요리를 만들 수 있다니, 놀랐어.”
“나도 그래. 안 먹어본 음식들도 궁금해졌어. 다음에도 여기에서 만나.”
비어진 그릇을 보며 생각했다. 안식과도 같은 이 한 그릇에도 얼마나 많은 집요함이 배어있을까.
“힘든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난 네 집요함이 좋아.”
D가 고개를 살짝 기울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