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보이는 오픈 주방에서, 일식 조리복에 검은 두건을 쓰고 분주히 움직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는 왼쪽으로 손짓을 한다.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유적지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검은 철문이 보인다.
“설마 이게 입구야?”
내 말에 D가 문을 밀어보았다.
“와, 꽤 무거운데?”
문이 열리자 은은한 조명아래 낮은 톤의 그림자가 여러 겹 깔린 실내가 나타났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바의 가장 구석진 곳에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의자에 앉자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메뉴판을 건네줬다. 첫 장에는 손으로 쓴 오늘의 메뉴가 붙어있었다. 그중 생참치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생참치를 파네?”
반가워하는 기색에 D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생참치? 그게 뭐가 달라?”
“대부분은 냉동참치잖아? 작년에 통영에서 먹어봤는데 확실히 달라.”
“그러면 다른 거 볼 필요도 없지. 이걸로 하자.”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생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맥주 두 잔과 양배추 샐러드가 올려졌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검은 두건의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생참치 취급하는 식당은 별로 없던데, 어디에서 구해온 거예요?”
남자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부산에서 공수해 온 건데 3, 4월에만 구할 수 있어요. 같은 생참치 중에서도 두 가지 급이 있어요. 치가 들어있는 생선들은 성질이 급해서 금방 죽어버리거든요. 참치가 죽으면 살에 피가 배어 드는데 지금 들어온 참치는 죽기 전에 배 위에서 피를 뺀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들뜬 마음이 더욱 고조된다.
기다리던 생참치는 여섯 가지 부위가 손질되어 십각형의 유리접시 위에 정갈히 놓여 있었다.
D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여기에 맥주는 안 되겠지?”
“응, 예의가 아닌 것 같아.”
D가 강하게 동의하고 보리소츄인 무기이찌를 주문했다.
뱃살을 한 점 집에 입안에 넣고 잔을 부딪힌 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왼쪽 귓가에 D의 탄성이 들려왔다. 탄력 있게 씹히던 참치는 이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마음에 들어?”
“완전. 그냥 부드러운 게 아니라 식감이 젤리 같아.”
우리는 말없이 다시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 25도의 술이 어느새 바닥을 보인다. 마지막 남은 술을 내 술잔에 따르며 D에게 말했다.
“퇴근길에 이렇게 갑자기 만나는 건 처음인데, 너무 좋은데?”
“그러니까. 종종 이렇게 보자.”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9시에 식당을 나와 서울숲의 골목길을 걸었다.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D에게 말했다.
“이렇게 일찍 헤어지는 것도 처음이야.”
D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좋다. 지금 이 기분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
“오늘 통하는 게 많네.”
술집에서의 여운과 함께 고요한 밤의 분위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아쉬움이 밀려드는 지금의 기분이 흡족하게 느껴졌다. 순간의 아쉬움은 오히려 충만함을 의미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