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22 어느 날

56. 으름과 성묘 20220829

by 지금은 Nov 03. 2024

으름덩굴이 사방천지입니다. 고향에서의 자랑거리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추억 한 가지는 있습니다. 호두, 다래, 으름……. 성묘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으름입니다. 나는 추석 때가 되면 유년 시절 어른들을 따라 조상님의 산소를 찾았습니다.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긴 시간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어른들은 어른 나름대로 형을 비롯한 내가 당연히 따라나서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성묘해야 할 장소는 여러 곳입니다. 고조 내외분, 증조 내외분, 조부모, 아버지 형제분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종손 집으로 향합니다.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도착하면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일가친척분들과 식사를 끝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고조부의 산소를 가기 위해 골짜기를 따라 산등성이를 오르고 잔등을 타기도 하고 골짜기를 몇 군데 지나기도 합니다. 산소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좋으련만 여러 개의 산등성이를 따라 흩어져 있으니, 어둠이 내려서야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어 아버지 산소는 찾지 못했습니다. 내일로 미루어야 합니다.


골짜기와 산을 넘나드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열매들입니다. 호두, 감, 밤, 다래, 으름, 도토리 등이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성묘하는 동안 어른들이 아이들을 토닥였습니다.


“다리 아프지!”


“우리도 힘든데 오죽하겠어. 그래도 잘 따라다니니 기특하지.”


어른들은 우리들이 힘들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돌아가며 침을 놓았습니다.


“앞으로 효자 되고 장군도 될 거야.”


산기슭에 아람이 벌어 떨어진 열매가 널려있습니다. 호두를 가지고 놀면 손재주가 좋아진다며 작고 예쁜 것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작은 손에 쥐어도 두 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감도, 껍질 벗긴 밤도 간간이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통통해진 대추와 동그란 다래도 따주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다래보다 으름이 많습니다. 습한 골짜기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으름을 발견했습니다.


“으름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하고 손가락질하며 소리쳤습니다.


“고 녀석, 눈도 밝네.”


우리 형과 동갑인 당숙 아저씨가 원숭이보다 더 날렵하게 나무 밑으로 미끄러져 갔습니다. 어른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덩굴이 감긴 나뭇가지를 잡고 바위 위로 올라갑니다. 줄기를 잡고 미끄러지듯 바위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영락없는 타잔입니다. 한 아름 망태에 담겼습니다.


“조금 덜 익었네.”


집에 가면 쌀겨에 묻어두라고 했습니다. 한 보름쯤 있으면 익을 거랍니다. 아버지 산소 옆 골짜기에도 으름덩굴이 무성했습니다. 산소에 들리면 으름을 한 바구니 따는 것은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조부모, 부모 형제들의 산소를 한 곳으로 이장했습니다. 이곳도 예전 장소처럼 주위에 으름덩굴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산림이 덜 우거졌기 때문인지 으름덩굴은 하늘로 향하지 못하고 골짜기의 바닥을 덮기만 했습니다. 벌초가 끝나면 어릴 때를 생각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열매를 구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등성이를 넘어 예전의 장소를 가볼까 했지만 홀로 가기에는 우거진 숲 속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벌초하러 갔다 왔는데 오랜만에 오가는 길이 편안했습니다. 아들이 직장을 쉬는 날이어서 우리 세 식구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두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벌초보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하여 아홉 시가 넘어서야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귀가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습니다. 내 일상이 그러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출퇴근 시간이 길었습니다. 직장까지는 보통 두 시간 이상의 거리입니다.


산소에 회사원의 출근 시간처럼 일찍 도착했지만 벌써 예초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까이 사는 사촌 동생들은 수건을 목에 건채 어느새 제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갈퀴를 손에 쥐고 잘려 쓰러진 풀들을 모아 한 곳에 버리는 일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회양목과 개나리, 영산홍을 다듬기도 합니다. 한동안 바쁘게 움직이던 일손이 잠시 멈췄습니다.


휴식 시간입니다. 나는 유년기의 추억이 담긴 으름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 예전보다 수풀이 무성해졌습니다. 따라서 으름덩굴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 잎이 주위를 감쌌습니다. 이에 따라 군데군데 죽은 나무들도 있습니다. 으름이 있을 만한 곳을 살폈습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잎은 무성한데 으름이 보이지 않네.”

“저기요.”


사촌 동생이 내 말을 듣고 다가와 손가락을 들었습니다. 눈이 손가락을 따라갔습니다. 찾아도 보이지 않던 으름이 재주라도 부린 양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저게 으름이라는 거야. 생김새는 작은 바나나, 익으면 키위와 비슷한 색과 피부를 지니게 되지”


아직은 잎과 같은 녹색입니다. 올해의 추석은 예년에 비해 이릅니다. 늦은 추석이라면 제대로 익은 으름을 보여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설명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약초에 관심이 많은 동생이 말했습니다.


“여자에게 좋아요.”


익은 것도 좋지만 지금 따서 말려 차로 끓여 마셔도 좋다며 따보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덩굴을 잡아끌었습니다. 열매가 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줄기가 툭 끊어졌습니다. 열매는 손끝을 떠나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막대기로 열매를 때렸습니다. 네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두 개는 손에 쥐었지만, 두 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다음날 보니 피부가 주글주글해졌습니다. 내가 생각한 으름의 모습이 아닙니다.


‘괜히 땄지.’


실망입니다. 잠깐의 판단 착오가 여운을 남깁니다. 원숭이 바나나, 타잔의 키위, 내 으름. 내년은 늦은 추석이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된 추석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중에도 으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2 어느 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