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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64. 마음속  피서 20210828

by 지금은 Dec 03. 2024

뜬금없는 겨울이 머릿속을 찾아왔습니다. 더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느 해 겨울입니다. 겨울 방학이 되도록 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방학을 며칠 앞두고 말했습니다.


“겨울은 눈이 내려야 제맛이지.”


“맞아, 강추위도 있어야지.”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강원도로 이박삼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일기예보에 맞춘 것입니다. 영월로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눈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루눈이 연기처럼 날린다고 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함박눈으로 변했습니다. 삽시간에 발목까지 빠집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왔습니다. 너나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눈밭에 머물렀습니다. 추억을 남겨야 한다며 눈싸움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엎어지고 젖혀지며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도 되었습니다. 눈발은 점점 거세집니다. 눈과 어둠이 어울려 시야가 흐려집니다.


“뭐야, 눈에 갇히는 거 아니야.”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폭설에 갇혀 계획된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며칠 동안이나 교통이 끊겼던 일이 있습니다. 고속도로까지 막혔으니 다른 도로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을 길이 사라져 동네 청년들이 굴착기로 눈을 치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기예보에 우리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같은 곳에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니 걱정스러운 눈빛입니다. 며칠 동안 폭설이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우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거듭했습니다.


우리는 눈에 쫓기며 다음날의 일정을 포기했습니다.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세찬 눈발이 우리의 뒤를 쫓아왔습니다.


‘맘대로 해 보라지.’


아쉬움에 천천히 평창의 경계선을 벗어났습니다. 눈발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텃세를 알고 있을까.


더위를 잊었는데 목덜미가 뜨겁습니다. 마음이 평창에 좀 더 머물걸 그랬나 봅니다.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얼굴을 붉힌 수박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뭐 무 뭐, 더위란 게 별것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안고 가는 거지.’


추위도 생각하고, 더 이글거리던 여름도 생각하다 보면 더위는 내 눈치를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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