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대기자는 붐비지만, 오늘은 유달리 발 디딜 틈이 없이 공간이 협소해 보입니다. 머무르는 장소의 의자는 사람들의 궁둥이가 닿을 정도로 채워졌고 사이사이에는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습니다. 가끔 불평의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추석의 연휴가 끝난 단골 치과 병원의 모습입니다. 진료 신청서에 이름을 써넣고 빈틈을 찾았습니다. 용케 의자 하나가 비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내가 옆으로 다가갔을 때 진료를 위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며 자리를 비운 사람이 있습니다. 손짓합니다. 양보 아닌 양보를 합니다. 기다림이 시작될 것입니다.
삼십여 분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슬그머니 일어나 접수대로 다가갔습니다.
“예약 시간을 삼십여 분이나 넘겼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환자가 너무 많아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다시 기다린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났습니다. 다시 접수대로 다가갔습니다.
“접수는 된 건가요.”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지체된다고 합니다. 예약하지 않은 손님이 많이 찾아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답니다. 예약을 한 사람부터 진료를 해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위층 진료실로 올라가 진료 대기석에 앉아있으세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열 시 반 예약인데 옆 사람 중에는 아홉 시 반 예약자도 있답니다. 슬그머니 화가 납니다. 두 시간이 어느새 지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예약문화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착이 되려면 긴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간간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예약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립니다. 주로 보여주는 곳이 음식점입니다. 고객에 대한 불평입니다. 단체 손님이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no show'
주인들은 말합니다. 미리 사정을 말해주면 다른 손님을 받을 수도 있는데 장사를 망쳤다고 합니다. 준비해 둔 식재료를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되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푸념 섞인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가지 않은 예약 손님의 잘못입니다. 호텔이나 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약 손님을 기다리다 보니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의 예약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경우는 대부분 손님의 태도입니다.
지금 내가 문제를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와는 반대로 업주의 행태입니다. 추석 전전날이었습니다. 그동안 어금니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더는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에 늘 다니던 치과에 진료 예약을 신청했습니다. 담당자는 평소와는 달리 예약 기간을 짧게 말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음 날 오세요.”
시간도 일방적으로 정해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열흘이나 보름쯤 뒤로 미루어져야 맞습니다. 그때는 오늘처럼 붐비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님이 적어서 한가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다시 기다림이 계속됩니다. 지친 마음에 치아의 상태를 촬영하는 기사에게 내 순번을 물었습니다. 몇 차례 기다리라는 말뿐입니다. 아래층 접수대로 향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순번은 어떻게 되는지 말했습니다. 곧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기다리는 사이에 많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 치료받고 떠나갑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둘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떠나자, 대기석이 텅 비고 나를 포함해 두 명 남았습니다. 눈에 뜨이는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열 시 반 예약을 하고 계속 기다렸는데 나는 언제 치료를 받지요.”
“잇몸 사진 찍으셔야지요.”
“찍은 지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제야 내 이름을 확인합니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기구를 정리하던 그는 의사에게 다가갑니다. 내 진료가 끝났을 때는 두 시가 훨씬 지났습니다. 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무원과 마지막 서류를 작성 확인하고 진료비를 납부했을 때는 세시가 되었습니다. 나는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뒷전에 밀려 맨 마지막 환자가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을 넘긴 간호사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료받으며 말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못해서 어쩌지요.”
“여태껏 기다리신 분도 계산대요 뭐.”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에서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전철 안에서 지루함을 달래려고 책을 들었지만, 눈이 건성으로 활자 위를 지나갑니다. 한 마디로 기분이 나쁩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역시 기분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서히 잊히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재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소리를 내며 내 표정을 바꾼 것도 아닙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췄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조용조용 몇 차례 내 순서를 물었을 뿐입니다. 누구도 내 이름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기다리라는 말에 하루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취소해야 했고 볼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나는 전에 한동안 안과를 자주 다녔습니다. 이곳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늘 예약하지만, 대기하는 시간이 깁니다. 참다가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혹간 보입니다. 누군가의 주먹다짐에 경찰이 온 경우도 있습니다. 예약문화가 좋은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운용의 미를 살려야 합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예약이 필요합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은 언젠가 체하게 되고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예약의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생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하나하나 되돌아보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빨리 바람직한 예약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