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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식사

초청2

by 다날


-식사가 전쟁이죠.

-그럴 리가. 이렇게 천천히 씹어 먹는데.

아저씨는 숟가락으로 봉지 안을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한 숟가락 천천히 뜨더니 꼼꼼하게 씹었다.

-아저씨,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는 게 참 힘들어요.

그는 빈 숟가락을 한번 크게 핥았다. 입에 묻은 음식의 잔상을 닦아내곤 나를 쳐다봤다.

-어디 아파?

-예?... 아니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아파 보일 정도로 마르지 않았다.

-그럼? 왜 먹기가 힘든데?

-비싸서요.

아저씨의 눈엔 새삼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뭘 투정 부리냐는 듯한 은은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이런 아저씨한테까지 경멸을 받는다는 게 적지 않은 모멸이었다.

-아저씨. 비싼 식당은 생각도 안 해요. 어떻게든 싼 데 찾아가죠. 근데 사람들 생각 다 똑같아요. 그런 곳은 줄 서기 바빠요. 살기도 바쁜데 줄은 언제 서요.

아저씨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봉투를 뒤적거리더니 한 숟가락 가득 떴다. 무시였다.

-사실 밖에서 잘 먹지도 않아요. 사서 해 먹지. 근데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은 척 나근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별말 없이 음식을 음미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렇게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움직이는 거예요. 먹으려면 돈 벌어야 하니까. 아저씬 그래본 적 없죠? 항상 여유롭죠 식사가?

아저씨는 나를 한 번 지긋이 보곤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한 숟가락 크게 퍼 올리더니 나에게 건넸다.

-언제 배고프다 했어요!?

아저씨의 숟가락을 강하게 손으로 쳐냈다.

-누가 그딴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요! 진짜 더럽게...

-주워 와.

은은하지만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소리의 농도가 깊어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엎어진 그의 숟가락을 주웠다. 아저씨는 숟가락을 옷에 몇 번 문지르더니 다시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을 삽질했다.

-음식물 쓰레기 맞지... 너한테는. 나한테는 음식이고. 그것도 여러 가지 다 섞여 있는 뷔페야 너는 비싸다고 가지도 못한다는 그런 비싼 식당이지.

-그걸 우린 쓰레기라 불러요. 음식이 아니라. 그래서 아무도 건들지 않는 거고요. 좋은 건 절대 남한테 안 줘요.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난 줬는데? 방금 새로 뜯은 신선한 음식을? 설렁탕 집 꺼라 특식인데 심지어.


아저씨는 한 입 가득 채우고 다시 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적당히 다 먹었는지 그는 봉투를 다시 묶었다.

-잘 먹었다. 너무 천천히 먹었나?

-......

입술을 살짝 깨물고 미세한 끄덕임으로 답했다.

-너무 다른 사람 음식까지 먹으려 하지 마. 다들 그러니까 밥 먹기가 힘든 거야. 네가 먹을 걸 뺏기는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고.

-......

-어치피 이렇게 남잖아 음식은. 그리고 다 섞이게 돼 있어. 싸우지 말고 천천히 먹어 봐.



집 앞 공원에 앉아 숟가락질하던 그가 사라졌다. 벤치 앞 떨어져 있는 숟가락과 비둘기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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