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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전선 1

알바라는 공중

by 낭낭

잘렸다.


프리랜서의 삶이 그러하듯 언제 어떻게 어디서 일이 사라질지 몰라 언제나 마음의 준비를 하긴 하지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말 그대로 갑작스럽다. 그것도 오랜만에 꽤 마음에 드는 일자리라면 더 그렇다. 또 다른 일로 출근하는 길에 갑작스럽게 통화가 되냐는 부장님의 문자에 전화를 드려보니 해고 통지가 내려왔다.


해고의 이유는 인원 감축이었다. 웬만하면 인생의 밝은 면을 보려고 하는 나는, 오히려 계속해서 정리가 되지 않아 땜빵을 구해야 했던 스케줄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해고 통지를 내린 상사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거지 같은 나의 일정들을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고 전화 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프리랜서 연극인의 삶이란 게 일이 있으면 무한정으로 있고, 일이 없으면 또 무한정으로 없는 것이었다. 어쩔 때는 하루에 3, 4개의 일정을 몸을 갈아가면서 소화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 아니 어쩌면 한 달 넘게 아무런 일 없이 그냥 있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이 없을 때 경제적으로 풍족하냐? 그것은 절대 아니지. 내가 버는 돈은 같은 또래의 일반 직장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새의 발톱에 낀 때만큼도 못할 거니까. 그것도 참새의 발톱.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있었는 지도 모르게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20대 때는 그런 삶이 괜찮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무엇이 문제였겠나. 열정이 있는데. 그런데 30대가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젠장, 열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구나. 열정은 열정 따위의 것으로 전락해 버렸고, 집에만 있는 나 자신이 무쓸모하게 느껴져 장기하의 노래처럼 쩍 눌어붙은 장판과 일체화가 되어 무기력과 불안감이 몸을 감쌌다. 안정적이고 싶었다. 존재 가치가 있었으면 했다. 일을 하고 싶었다. 알바라도, 단기로라도 찾아야 되겠다. 작업에만 집중하느라 알바 안 한 지 오래되었는데 갑자기 그 필요성이 엄청 느껴졌다. 일을 하자 일을. 나 자신이 쓸모 있게 느껴지려면, 존재의 가치가 느껴지려면 쏘냐가 바냐 삼촌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일을 해야 했다. 일을.


그렇게 알바몬과 알바천국, 당근 알바 등을 전전하다가 1달만 빠싹 일하면 끝나는 팝업 스토어 알바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도 괜찮고 집도 가까우니 좋은데 생각하면서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사람이 급히 필요했는지 수월하게 일을 구했다. 알고 보니 어떤 가상 아이돌의 팝업 카페였는데 난생처음 들어본 그 아이돌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일본 만화 캐릭터의 모습을 본뜬 것 같은 2D인지 3D인지 분간이 안 되는 5인조 아이돌을 보려는 손님들이 카페의 4타임을 채웠다. 엄청난 인파가 계속해서 줄을 섰고 영상으로 아이돌들이 활기차게 인사하는 소리가 매장을 울렸다. 1 타임씩 교대로 일을 해서 총 2타임만 일하면 되고 나머지 시간은 대기를 하면 되는 터라 꽤 편한 일이었다. 물론 몰려드는 손님에 의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때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팔아야지 내가 일을 하는 존재의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맨날 나가는 것도 아니고 미리 스케줄을 받아서 되는 날짜만 가는 방식이니 프리랜서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첫 주 출근을 하고 나서 갑자기 팀이 행사에서 전원 철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젠장, 인간한테 잘리는 것도 모자라 이젠 가상 아이돌에 의해서까지 잘리다니. 이런 진귀한 경험을 다 해볼까. 그렇게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꿈은 와르르 무너지고 다시 알바전선에 들어갔다.


알바몬과 알바천국에 마땅한 알바가 안 보이자 자연스레 당근알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단기 알바도 많이 올라오고 이전에 당근으로 구했을 때 딱 치빠(치고 빠지기)하기 좋았어서 장기근무가 부담스러운 나에게는 아주 적절한 구인구직 통로였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네에 있는 일본 가정식, 그리고 지하철 환승 없이 갈 수 있는 중국집. 시간도 비슷하고 일하는 시간도 비슷해 두 곳 모두에 지원하고 모두 면접을 봤다. 나의 사정을 얘기한다. 한 달 정도 일을 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혹시 스케줄이 간간히 조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혹시 괜찮은 지를 먼저 물어본다. 그런 부족한 나라도 괜찮겠냐고 질문을 한다. 난감한 매니저들. 그렇지. 누가 시간이 애매한 알바를 계속 쓰고 싶어 할까. 누가 그런 피로한 조율을 계속하기를 원할까. 존재 자체가 짐이 되고 일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기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을 도대체 누가 선호하겠는가.


그렇게 면접을 보고, 한 곳은 사람이 너무 필요한 지 저녁에 잠깐 와서 일을 해 보고 결정하세요 한다. 일을 오랜만에 하니 고되지만 돈을 벌고 있다는 즐거움이 올라온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데 집 방향이 같은 매니저가 주방 알바를 하겠다는 친구가 갑자기 홀로 가고 싶다 해서 나더러 일을 못 할 거 같다고 알려준다. 그럼 도대체 하루 일은 왜 시킨 거지. 의아함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6만 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어서 시간 날리는 것보단 괜찮지 않나라는 방식으로 긍정회로가 돌아가 매니저에게 괜찮다고 한다. 솔직히 그릇도 너무 무거워 손목이 나갈 거 같았으니 오히려 그 편이 더 잘 되었다고 생각했을 지도.


다음 날 급했는지 다른 곳에서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전날 일한 가게도 갑자기 주방에서 홀로 가겠다고 한 친구에 대한 결정을 사장이 번복을 해서 출근이 가능한 지를 물어본다. 갑자기 두 곳 모두에서 일 제안이 들어와 선택지가 생긴 나는 자연스레 접시가 덜 무겁지만 점심 장사를 미친 듯이 하는 중국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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