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시간
무언가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떨리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고 잘 맞을까인 것 같다.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내일로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 단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다.
등 뒤에 전문가와 함께 발을 맞춰 달리고 공중 속으로 뛰어들어 15분, 운과 바람이 좋으면 20분 가까이 공중을 배회하다가 서서히 낙하한다. 달릴 때 발을 맞추는 것부터 공중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까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목숨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의 작은 구석에는 어색하고 불편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존재했다. 다행히 무사히 내려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순탄한 공중 속의 시간 때문에 왜 날씨가 이렇게 좋을까, 바람이 왜 조금은 더 불어주지 않을까 하며 스릴을 조금 그리워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시작한 알바는 스릴 넘쳤다.
도심의 한 가게. 11시부터 15시까지의 업무. 홀서빙.
매일은 아니지만 회사가 나름 많은 도심에서 이 시간대는 박 터지면 진짜 제대로 터지는 곳이었다.
11시 출근과 함께 가게에 손님이 있는 날에는 "아, 오늘은 사람이 많이 있겠네"라는 생각과 함께 런치특선의 메뉴들을 계속해서 나르고 치우고 안내하고 대기를 부탁하곤 했다. 분명 이렇게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는데 같이 일하는 언니가 웃으면서 "손님 끌고 왔네"라고 하면 함께 오늘도 잘 이겨내자고 다짐을 했다.
오랜만에 일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나의 자리에서 어느 정도 이뤄냈다고 자만한 모든 순간들을 바닥으로 내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익숙지 않은 업무, 익숙지 않은 공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고 오만해지는 순간 생기는 실수들. 어느 날은 한 손님을 앉혀드리고 옆에 있는 식판을 치우다가 간장종지를 날려버려 손님의 바지에 다 튀었다. 연신 미안하다 사과드리고 세탁비를 드린다. 2시간 치 시급이 훨훨 날아가는 순간. 괜찮다고 하는 손님에게 내 마음이 불편해서 드리는 금전적 보상. 그럼에도 편해지지 않는 마음.
이런 스릴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 일을 하다 보니 오랜만에 이런 생각들이 고개를 든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손발 맞추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왜 이렇게 안 해 줄까. 내가 이렇게 바라는 것이 맞나. 뭔가를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아니야, 저 사람은 저 사람만의 방식이 있는 걸 텐데, 내가 언제 그걸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지. 그래도 이렇게 하면 조금 더 편하긴 할 텐데. 남들의 잘잘못을 요즘에 너무 많이 생각했나. 내가 너무 남들을 내 기준에 판단하며 살아왔나. 마치 지킬 앤 하이드가 된 것마냥 생각들이 두 가지의 다른 갈래로 뻗쳐 나가다가 피슉 하고 공기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알바 경험은 있다고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을 판단하는 나 자신을 만났다.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텐데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타인을 힐난하고 질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진짜. 멋없다. 나 진짜 멋없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구나.
그러면서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일하는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렇게 되니 손발을 맞춰 갈 수 있었고 편해졌다. 일이 재밌어졌고 익숙해졌고 서로의 세상을, 삶을 공유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다가가고 마음을 여니 반대에서도 똑같이 열려서 다가왔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점점 손발을 잘 맞춰가며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나름 아주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날
부장님이 전화될 때 통화 한 번 하자고 연락이 온다.
신호음이 넘어가고 부장님이 전화를 받는다.
"이번 달까지만 나오면 될 거 같아요."
그렇게 다른 일자리로 가는 출근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