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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공

낙하하고 공중 속으로

by 낭낭

한영키를 풀지 않고 낙공을 쳐보니 skrrhd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갑자기 한 때 유행했던 (유행에 뒤처져 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힙합 프로그램에서 많이 나오던 skrrr이 떠오른다. 뭔가 마음에 드는 가사, 잘 쳐진 가사 등이 있을 때 내뱉어진 그런 추임새. 물론 그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의문이겠지만.


작년에 크나큰 번아웃을 겪고 올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굳이 쓰고 싶지 않은데 그건 아마 극복이 안 되기 때문에? 극복이라기보다, 이 번아웃과 같이 지내다 보면 언젠간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극복하려는 것은 노력을 요하는 것이고, 그 노력이 또다시 실패하면 더 큰 번아웃이 나를 잡아먹을 테니까.


실패.

실패란 말을 요즘엔 정말 많이 쓴다.

실패에 연연하지 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잘 실패해야 성공할 수 있다.

말이 쉽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매주매주, 매달매달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잘 실패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잘 실패한다. 말 자체가 어패가 있는 건 아닌가. 이젠 실패까지 잘해야 하나.


그러면서 수많은 실패들을 기록하려고 쓰는 이 글의 총제목을 뭐라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낙공 落空

계획하거나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수포로 돌아간다.


정말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상과 바람들을 이뤄오지만 그것들이 무수히, 와장창 무너질 때가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뭐 100가지쯤은 있겠지. 아니면 이유가 어딨어 운명이 그냥 나를, 내 삶을 이따위로 만들어내는 것이겠지. 그랬을 때 우리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좌절하곤 한다.


이 감각이 무엇과 비슷할까 생각해 볼 때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으로 떨어지는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저 단어는 떨어질 락과 빌 공으로 만들어진 단어니까. 그래서 내 마음에 드는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보았다.


낙하하고 공중 속으로


번지점프를 버킷리스트에 넣고 시도를 못 해 보았다. 스카이다이빙이라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 공중 속으로 발을 내밀고 낙하하는 그 스릴과, 공중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기대감과, 무사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전체를 느끼고 시험하기 위해서.


어쩌면 지금 두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계속 낙하하고 있는 나는, 계속 이 빌어먹을 끝도 없는 공중 속에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스릴을 발견하기도, 두려움과 걱정을 마주하기도,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낙하가 지속될지, 그리고 그 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낙하하고 있는 순간들을 기록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전체적인 풍경을 기억하고 돌아보지 않을까. 착지할 때 아쉬움이 없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남들이 나의 실패를 어떻게 판단할지 너무 두렵고 무섭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냥 모르겠다 하고 냅다 올려 버린다. 기록을 위한 나 자신의 약속이면서 하나의 도전으로. 나의 삶을, 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넓디넓은 World Wide Web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을 거라고 이렇게 걱정하나 싶은 생각으로. 판단하려면 판단해, 나는 그 속에서 조금 더 자라 볼게 하는 마인드로. 더 깊은 공중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더 다양한 풍경을 또 볼 수 있겠지.


낙하의 순간들을 눈감은 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땅 위에서 계속 낙하하는 지금의 상황과 감정들을 담은 낙하일기.


어디가 나락인지 보자.

그리고 나락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게 진짜 나락인지 단단한 땅인지

한 번 보자.


그리고 착지를 완료한 후에 기분 좋게 skrrhd이라고 외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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