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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사업

언젠간 올 뛰어들고 날아오를 때를 향해

by 낭낭

연극을 하는 사람의 삶이 어떤 지 많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저 돈을 별로 못 벌고 국민의 세금으로 어찌어찌 살고 있는 인생.

누군가에게는 챙겨줘야 하는 이유가 없는 답답하고 이기적인 술 많이 먹는 인종으로 보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멋진 청년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연극인들은 불안을 버티고 쓸모없는 존재가 된 거 같은 자기 연민, 분노, 괴리감 등을 버티고 하루하루 알바 자리를 찾는다. 공연이 있으면 일주일 또는 한 달의 시간을 양해를 구하거나 일을 그만두고 잠깐의 배우, 예술가가 된 행복감에 젖었다가 다시 불안이 가득한 삶으로 돌아간다. 요즘에는 예술교육도 풀이 점차 커져서 많은 연극인들이 이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하지만, 매년 쏟아져 나오는 예술분과의 학생들과 점차 줄어드는 출생률로 그 시장 또한 과포화 상태에 진입 중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다. 물론 이것은 잘 나가는 작가, 연출, 배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외의 대다수의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고 그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참 슬픈 현실이다. 아 이러면 오해가 있을 수 있겠군, 나는 연극인이니까 대다수의 연극인이라고 하는 게 아마도 맞겠구나.


이런 연극인들이 살기 위해 꼭 잡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국가에서 행하는 지원사업이다. 다양한 복지사업과 예술지원정책이 있는데 매년 10월이 되면 다음 해에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굵직한 사업들이 펼쳐진다. 이때는 공연을 하는 자든 안 하는 자든, 연출, 기획, 작가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과 피로감이 물든다. 씨를 뿌려야 곡식을 수확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원서를 쓰고 탈고하고, 또 탈고하고, 또 탈고하고. 질릴 때까지 반복되는 작업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더 이상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수정을 거친 후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버린다. 이후는 하늘에게 달린 일이고 운이 좋기를 기도할 수밖에.


하늘에게 달린 일. 하늘의 일.

그렇게 모든 주권을 하늘에게 던져둔다.

기도하듯이 쓴 지원서를 제발 긍휼히 여기소서 생각하면서 하늘의 이루심을 기다린다.

1달. 2달. 3달. 4달.

다음 해 1월 말, 2월이 되어서야 전년도에 뿌린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해의 농사가 확정된다. 바쁘게 수확을 하면서 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에라이 망한 농사에 잡초나 죽이기 위해 살충제 뿌리고 보람도 결과도 없는 노동 후의 허탈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며 자기 연민과 자기 비난을 해소하고자 발버둥 칠 뿐이다.




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재작년에 그래도 농사를 잘 지어 2개의 굵직한 사업에 선정되어 이제는 올라갈 일 밖에 없구나 희망회로를 돌렸다. 이거 했으니 이제 이거 받고, 저거 지원해서 저기 올라가고, 사람들 주목 이제부터는 받을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참말로 인생은 만만치 않다. 거의 20개 가까이 넣은 지원서는 개인적인 생계를 위한 복지금을 제공해 주는 것을 제외하고(물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고 이조차 못 받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참 욕심 많은 인간이다..) 작업을 할 수 있는 지원서는 전부 낙방했다. 축제, 페스티벌, 지원금 등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나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존재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페스티벌 하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극장뿐이고 참가비가 추가로 있었던 터라 개인 생계를 위해 받은 돈을 여기에 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예술은 가난한 맛에 하는 거지. 관객 많이 끌어모으면 되지. 좋은 작품 만들면 되지!

공연은 서울연극제와 겹쳐져서 포화상태 기간에 공연을 올려 극장은 불포화 상태에 머물렀다. 극장도 나의 통장도 그렇게 텅텅. 나의 멘탈도 텅텅.


6월에 공연이 끝나고 감기에 걸렸다. 한 여름에 감기라니. 기침이 끊이질 않아 병원에 갔는데 여름기침이 더 안 떨어진다고 했다. 더우면 목에 붓기가 안 가라앉는다나 뭐라나. 의사 선생님 말대로 기침은 거의 한 달을 갔고 그 기간 동안 누구를 만나지도, 술을 마시지도, 나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못한 채로 침대에 누워 또다시 떨어진 지원사업의 연락을 무한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발표인데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면 미선정이라는 세 글자가 나를 반겼다.


도대체 누가 되는 거야 생각하며 예술전공 대학을 안 가서 라인도 빽도 없는 나의 상태를 원망한다. 그렇다고 이에 굴복해서 학교를 가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생각하며 선정자들의 이름을 본다. 아 이 분이 되었구나. 이 분 받을 만하지. 이 분이 나랑 같은 곳에 지원한다고 이게 맞나? 세상에 대한 분노가 방 한 구석의 침대 위 마음속 공간에서부터 점차 커진다. 이렇게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거구나. 운동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이라도 먹으면 나을 텐데. 누구를 만나서 즐겁게 얘기하면 조금이라도 나을 텐데. 빌어먹을 몸뚱아리는 왜 이렇게 오래 아파가지고 나를 힘들어하는 건가.


대학생 때 내일로를 떠나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장님이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늘을 날고 내려온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바람이 조금 더 불면 더 위아래로 요동쳐 재미있었을 건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없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어서였다. 그래도 바람이 너무 불면 아예 타지를 못했을 거니까 운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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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시기가 있다. 패러글라이딩도 가능한 날과 시간이 있듯이 지원사업도 가능한 날과 시간이 있는 거겠지.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만한 상태로 어떻게 일을 그르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쩌면 아직은 날 수 있는 날이 아닌 것일 수도. 그래서 작년의 나는 바닥에 아주 심하게 떨어진 것일 수도. 지금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회복하는 시기인 것 같다. 지원사업이라 하면 치가 떨리니까 심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간 되겠지. 그리고 진짜 날고 싶을 때, 누군가가 이것은 좋은 경험, 희대의 찬스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뛰고 싶은 볕 좋은 날에 뛰어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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