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직시
작년 7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증시는, 26년 주식투자 인생에서도 역대급으로 겪어보는 하락장세입니다. 26년 동안 주식투자를 하면서 수많은 상승과 하락을 겪어 봤지만, 이번 하락처럼 변동성이 불규칙하고 단기간 낙폭이 큰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주식투자는 상승과 하락의 반복이고 하락을 회피하면, 상승에서 수익도 없다는 걸 강조했지만, 이런 하락은 아무리 주식 비중을 조절하고 헷지를 적절히 구사한다고 해도 손실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락장에서 손 놓고 있으면, 물려있는 비주도주 때문에 결국 상승장에서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하락장에서도 대응을 해야 된다고 늘 강조드립니다.
미국 증시가 하락의 정점을 달리던 지난주, 미국 증시는 선물옵션 만기주였습니다. 이번 증시의 급락은 과도한 인플레이션과 여기에 대한 fomc의 엄중한 금리정책이 결국 경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경기 위축 공포가 증시를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증시가 언제 반등할지를 생각해보면, 위 과정의 역순을 추적하면 됩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꺾여야 증시는 상승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원자재와 곡물, 특히 원유/천연가스/밀입니다. 결국 원유와 천연가스, 밀 가격이 하락으로 전환되면 증시는 통상 다른 지표보다 선행성이 있어서, 반등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인플레이션의 폭등이 공급과 수요 논리도 당연히 있지만, 투기적 거래에 의해서 왜곡된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원유 공급의 부족이 계속 대두가 되는 상황에서, 실제 각 원유 산유국들의 수출 물량을 개별적으로 합산해 보면, 오히려 공급이 늘어났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모든 개괄적인 리포트들은 정황상 원유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마치 공급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도를 했습니다. 정황과 현실이 다른데 주식투자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보아왔고, 결국 이런 괴리는 아무리 투기적 거래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더라고 결국 시장에 의해 바로 잡아지는 걸 보아왔습니다. 특히 이런 가격 왜곡이 원자재나 곡물일 경우, 미국 선물옵션 만기를 기점으로 투기적 거래가 종료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 선물옵션만기를 앞둔 6월 둘째 주부터, 미국 선물옵션만기가 지나면 이런 급락장이 바뀔 수 있다고 언급드렸던 건, 위의 내용이 바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미국 선물옵션만기주부터 집중적으로 저 논리로 증시 반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 저 논리를 말씀드릴 때 있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입니다. 하나는 방송국에서 출연 대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증시를 대표하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저 논리를 말씀드렸을 때, 정말 유명하신 모 인사분이 선물옵션만기를 기점으로 원자재의 하락이 있을 수 있다는 제 얘기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고, 크게 핀잔을 주었고 주위의 다른 분들도 그분 얘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라 제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장이 워낙 급락 중이라 제 얘기가 황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은퇴하신 선배님과의 얘기입니다. 이분은 현직에 계실 때 우리나라 거시경제분석에서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분입니다. 이분과 저녁식사를 하고 시장 얘기를 하다가, 역시 저 논리를 말씀드렸을 때, 본인의 생각에 반하는 얘기라 상당히 불쾌해하시면서, 뭐 주식시장은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라면서, 애써 분노를 참으시던 선배. 지난주 초반은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지난주 후반 시장이 급락할 때, 저는 모든 제 시스템이 동시에 하락 정점 신호가 나오는 걸 보고, 제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지난주 수요일 목요일 하락의 정점을 향해 달릴 때, 오히려 하방 헷지물량을 계속 줄여 나갔습니다. 그 급락장에서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하락의 절정에서 헷지를 청산하는데, 단 한분도 의문을 표시하지 않으시고 저를 전적으로 믿어 주신 겁니다. 지난주 초반의 무거운 마음이, 지난주 후반 시장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국 증시는 결국 선물옵션만기를 지나고 지난주 급등했습니다. 이제 월요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애널리스트와 경제전문가들이 증시 바닥론을 외칠 겁니다. 대중들은 또 그런 애널리스트와 경제전문가들에게 흥분할 겁니다(시장이 바닥이냐 혹은 추가로 하락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은 바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지만, 또다시 급락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응하고 있느냐의 관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저는 이제 이런 반복되는 상황에 솔직히 지칩니다. 개인적으로 이제 이 일에서 한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진작에 물러나지 못했던 건, 고마움을 표시해 주시는 한분 한분의 글이, 언제 내가 26년 주식투자 인생에서 다른 누군가에게서 돈이 아닌 고마움과 좋은 기운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만들면서 여기까지 버티게 했나 봅니다.
주식투자는 길고 긴 여정입니다. 그 여정에는 상승도 있고 하락도 있습니다. 하락은 피해 가고 상승만 취하려고 하거나, 상승하든 하락하든 무조건 수익 낼 수 있다는 도박 같은 투자는 결국 증시에서 퇴출되고 맙니다. 주식투자는 상승장에서의 수익이 하락장에서의 손실보다 많으면 됩니다. 하락장에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안 하면 되고, 상승장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 해야 될 것을 정확히 하면 됩니다. 하락장을 피하거나 하락장에서 수익을 무리하게 만들려는 욕심이, 결국 매번 상승장의 끝자락에서 증시의 문을 두드리고, 하락의 끝자락에서 증시에서 퇴출되는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주식투자는 어느 재테크 상품보다 공정합니다. 노력과 인내에 대한 보상을 주식투자만큼 정확히 계산해 주는 재테크 수단은 없습니다. 내가 주식투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운이 아니고 노력이 부족하거나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26년 동안 온갖 주식시장의 민낯을 보아온,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