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사순시기를 맞으며

by 아마토

천주교에서 가장 큰 날인 예수 부활을 40여 일 앞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왜 하필 40일일까요? 40은 성경에서 구원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의미합니다. 구약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시간이 40년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나이산에서 단식한 기간이 40일이고, 예언자 엘리야 역시 구원받기 위해 호렙산으로 걸어간 게 40일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받은직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합니다. 그래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숫자입니다. 다만 지금은 '재의 수요일'에서 날짜를 계산하므로 실제로 사순시기는 44일입니다.


초가 3개씩 있는 제단

천주교에서 사순시기는 매우 중요한 기간이라 사순시기 주일미사 땐 초를 양옆에 3개씩 켭니다. 평소엔 1개씩, 중요한 날엔 2개씩, 더 중요한 날일 땐 3개씩이죠. 그중에서도 사순시기 직후인 3일(파스카 성삼일)이 연중 가장 중요합니다. 참고로 초는 예수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으로 세상을 밝힌 예수를 스스로 타오르며 빛을 내는 초에 비유한 겁니다. 이렇듯 천주교는 사순시기에 큰 의미를 둡니다. 다만 성경에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신교는 엄격하게 지키고 있진 않습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합니다. 각 가정에서 1년간 보관했던 나뭇가지(성지가지)를 태워 그 재를 이마에 바릅니다. 국내에서는 심하게 바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크게 인지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TV 생방송 중에 재를 바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권고문)


재를 바르며 하는 말입니다. 참 인상적이에요. 싱싱한 진초록의 성지가지가 물기 하나 없는 갈색으로 변한 후 한 줌의 재가 됩니다. 누구나 인생의 화양연화가 있죠. 가장 찬란히 빛났던 시간. 젊은 사람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일 수 있고,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지나간 시간일 수 있죠. 공부든 노동이든,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사순시기는 그런 화양연화를 위한 시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구원을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일반적으로 금욕적인 실천을 다짐합니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덜 하거나. 커피를 끊거나. 피정을 간다든지 말이죠.


매년 성당에서 사순 제1주일은 광야에서 유혹받는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들려줍니다. 악마는 예수에게 3가지 유혹을 합니다. 단식하여 배가 고프니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본능적인 의식주의 유혹. 자신에게 경배하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며 부정한 방식도 허용하는 권력에 대한 유혹. 그리고 성경에 천사들이 보호해 준다고 했으니 성전에서 몸을 던져보라는 믿음에 대한 의심. 이에 대해 예수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루카 4,1-13 참고)


후안 데 플란데스(Juan de Flandes), 1500년경,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마지막으로 성화를 설명하며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악마라고 하면 보기 흉하거나 무섭거나 그런 이미지를 생각할 텐데요. 실제로 유혹하려면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되겠죠. 유혹하기 위해서 멋있고, 아름답고 누구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림에서도 예수를 유혹하는 악마는 수도복을 입고 묵주를 쥐고 있습니다. 악의 유혹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3)


사순 1주일 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눈앞에 있는 악의 유혹을 이겼다 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악마의 유혹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다가옵니다. 유혹에 넘어가거나 죄를 짓겠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살아가다 보면 넘어지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건 항상 꽃길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넘어지더라도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힘들게 걷더라도 즐겁게 걸어가는 마음가짐. 기왕 걸어가는 거 힘들거나 고통이 있어도 "하나의 과정이다"라고 받아들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한 과정(여기서는 사순시기)을 지나고 나면 성숙한 자신과 행복, 기쁨이 올 거라 봅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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