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이 필 무렵
이해인
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
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
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
적은 양의 씰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
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 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
-「쌀 노래」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밥은 우리의 몸을 살찌우고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사람의 손길이 88번 닿아야 쌀이 된다고 합니다.
많은 손길이 필요한 작물입니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잡곡밥을 합니다. 어쩌다 하얀 쌀로만 지은 밥을 먹으면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보리밥만 먹던 시절 정부미로 된 쌀밥을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요즘은 백미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예전에 쌀은 귀하신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쌀로만 된 도시락은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혼이 나더라도 쌀밥 도시락을 먹고 싶었습니다.
시댁에서 쌀농사를 지을 때 논에 모를 심거나 가을에 추수 때가 되면 일꾼 밥을 해주러 시댁에 내려갔습니다. 논과 가까운 곳에 있는 빈집에 해가 뜨기도 전에 가서 걸레질해서 반들반들 닦아 놓고 아침밥을 차립니다.
커다란 무쇠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나무 때서 밥을 합니다.
나무 때서 하는 밥은 고난도라 어머님이 하십니다.
솥에 부글부글 쌀이 끓어오릅니다.
넘치는 밥물을 행주로 닦으며 밥을 짓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이 붙은 장작을 꺼내고 뜸을 들이면 구수한 밥 냄새가 허기진 위를 꼬륵 꼬륵 소리 나게 합니다. 밥에 뜸이 들고 무쇠 솥뚜껑을 열면 하얀 김이 구름처럼 뽀얗게 올라옵니다.
상에 반찬을 놓고 가운데 커다란 양푼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밥을 수북하게 떠 놓습니다.
그러면 일꾼들이 각자 그릇에 먹을 만큼 밥을 덜어다 먹습니다.
더 먹고 싶으면 마음껏 더 덜어 먹습니다.
양푼에 수북이 담긴 밥은 참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일꾼들도 게 눈 감추듯 밥주발의 밥을 순식간에 먹어 치웁니다.
보기만 해도 내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일꾼들은 다시 논에 모를 심거나 벼를 베러 나갑니다.
쌀은 힘입니다. 쌀은 풍요입니다. 그리고 밥은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