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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랜드 Jul 01. 2024

제정신인가, J양?



 긴긴밤 비는 내리고, 아무도 모를 언젠가를 추억하며 자리에 앉은 J양.

 

그는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자그마한 잡념에 사로잡혀 잠을 설치는 중이다. 틀어놓은 선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차례로 머리를 쓸어 넘긴다.


“J양, 무슨 생각하나요.”

“앗 아직 계셨군요. 전광판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를 이상한 사람이라 짐작하지 않게 생각의 회로를 잠시 멈췄다가 재시동을 건다. 차분하게 그녀에게 물어본다.


“그래요? 오늘 독특한 전광판을 보셨나 봐요. “

“아뇨 독특한 건 아니었는데 기억에 남은 이유가 단순해요. 너무 흔해서요.”

“전광판은.. 도시에 흔하지 않나요? 오늘에서야 특히 그 생각에 사로잡힌 이유가 있을까요? 전 그게 궁금해서요.”


그녀는 한바탕 웃었다. 갑작스레 웃은 것도 아니지만(그녀는 지금껏 옅은 미소를 유지해 왔었다.) 이렇게 큰 소리는 가끔 귀에 울릴 때가 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웃긴 표정(웃진 않았다.)을 지었다.


“차분하게 생각해 줘서 고맙네요. 대부분 그 질문에서 끝나거든요. 다들 그렇게 얘기해요. 왜냐면 그건 보통 그들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멈춰요. 무슨 생각을 하냐는 단순한 질문에 머무르고, 그 이후에 고요는 땅에 떨어져 버리죠. 그게 끝이에요. 근데 당신이 저한테 물어본 질문이 저에게 조금 기뻤던 거 같아요. 어머, 횡설수설 말이 많네요. 제가 원래 좀 그런 거 같아요. 너무 시끄럽나요? 미안해요 하하. “

“아뇨 시끄럽지 않아요. 그래서 웃으신 거였군요? 전 오해할 뻔했어요”

”어떻게요? “

“이거 민망해지는 질문이네요. 정말로요. 그냥 제가 엉뚱한 소리를 했나 했죠. “

“아 그렇군요? 이것도 답해줘서 고마워요. 왜 전광판인가 궁금해하셨죠? 단순해요. 전광판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흔해요. 정말로 심하게. 그게 전 문제라로 생각해요. “


‘전광판은 원래 있잖아요.’ 말할 뻔했다.

나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일반 상점은 무엇으로 홍보하는가. 간판도 달지 말라는 건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레 짐작하지 않도록 생각의 회로를 멈췄다. 다시 말을 이었다.

 

 “너무 많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우선 전광판은 쉽게 말해 사람들의 유혹을 만드는 거예요. 사람들은 마치 전광판을 보곤 자기가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심리를 갖죠. 예를 들어드릴까요?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세일하는 고기가 있어요. 매대에! 그것도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50% 할인에 소비기한도 넉넉한 거라면, 홀린 듯이 우리들은 장바구니를 채우지요. 그게 이것과 같아요. 전광판은 우리에게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걸 사게 만들어요. 정확하게는 사들이죠. 생각일 수도 있고, 물건이나 집착일 수도 있어요. 심지어는 그 형태가 심리가 될 수도 있죠. 그게 신기한 거예요. 전광판 하나로 사람의 생각이나 심리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신기하더라고요. “


“광고에 관해서 이야기하시는 거군요?”

“아뇨, 더 광범위해요. 광고보다 더 광범위하죠.”


‘아니 광고보다 더 광범위하다고? 그럼 전광판에 왜 올려. 글을 짓겠지.‘ 안 되겠다 생각을 조금만 더 정지해야겠다. 이러다 한 번은 쏘아붙일지 모른다.


“그래요? 어떤 면에서 그런 거예요? “

“저는 광고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광고는 소비에 관한 거지요. 저는 어쩌면 사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 광범위한 거죠. 광고는 단순히 목적이 정해져 있어요. 하지만 전광판에 게재되는 것은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그건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보여지면 안 된다는 말이랍니다. “

“아 그니까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목적성 없이 보이는 것들이 문제라는 건가요? 그리고 그게 너무 많고요? “


“정확해요! 고마워요 이해해 줘서 이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목적 없는 것들은 위험하죠. 명분이 없거든요. 그들은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명분을 만들 능력도 갖지 못해요. 그래서 사건 이후의 일들도 책임지지 못하지요.  어쩌면 우리는 전광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몰라요. 여러 광고 그리고 포스터 게재되는 그림들, 배경화면까지 경제적으로 좋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이제 선택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죠. 아까 예시에서의 고기처럼, 그들이 정말 예전부터 고기를 사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은 돈을 지불하죠. 그게 다예요. 그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문제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후회를 하게 되죠. 물론 그걸 판매한 이가 책임질 이유도 없지만요. 선택은 본인의 것이었지만 그것을 행동(여기서 행동은 구매하는 행위를 말하는 듯하다)까지 이을 힘은 본인이 아닌 고기를 광고한 이가, 전광판에 무언가를 게재한 이가 공급하죠. 이게 신기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러한 생각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른 언젠가 같이 고민할 날이 또 오겠죠?”

“당연하죠. 저도 이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만 우리 다음에 볼까요?”

“좋아요. 이제 비가 그치고 있네요. “


 난잡한 생각이지만 어떤 관점이 하나 있다.(제정신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그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는가에 관한 거다. J양은 주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한 번 더 생각하는 것과 한 번 더 생각을 검토하는 것. 그게 그녀의 발상인 듯하다. 그녀는 21세기 20세기 후반 삶에 익숙해져서 원시의 생존에 관한 위험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육식동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대한 상상보단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려 하는 듯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택하기를 강요한다. 지금 사지 않으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지금 배우지 않으면, 그리고 그 가정들은 큰 위험이 따른다는 또는 생존이 힘들 거라는 결론을 내놓는다.(당연하게도, 선택을 안 하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본인의 온전한 의지로 행해짐은 강요가 아니다. 그저 선택이고 한 갈래의 삶일 테니.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것은 아마 강요되는 선택에 관해서일 것이다. 많은 선택을 하는 만큼 더욱 집중해야 될 것이다. 선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결정할 지에,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할 지의 범위에, 무엇을 위해 선택할 지에 관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녀는 전광판을 보며 이런 생각과 잠에 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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