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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다움 Jan 29. 2024

다음 생에는 더 넓게 헤엄쳐야 해

04. 어항 속 물살이, 새우

https://youtu.be/YMgFEl5h8nI?si=JMJaBA-Qbzc0iL0D

♬ 물 만난 물고기 - 악동뮤지션


내가 가장 서럽게 울어댔던 그날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살던 때였는지, 천안에서 살던 때였는지. 집조차 가물거릴 정도의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의 그 차오르던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작지 않은 직사각형 어항에 구피와 새우를 키웠다. 큰 새우는 아니고, 그렇다고 씨몽키도 아닌, ‘체리새우’ 종이었다. 끝까지 커봤자 내 손가락 한 마디를 겨우 넘을까 말까한 크기의 친구들이었다. 워낙 빨빨거리며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작은 크기 탓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일은 아주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름의 애정을 준답시고 이름을 지어줬던 기억이 난다. 태극 문양 색을 가진 대한이, 호피 무늬의 호랑이. 몇몇 구피들의 이름은 어렴풋하게 기억나는데 아쉽게도 새우들의 것은 모조리 까먹어버렸다.


우리 아빠는 뭐든 가득 담는다. 밥 먹을 때 컵에 물도 가득 따르고, 가습기에 물도 가득 채운다. 그러니 당연히 어항 물도 끝까지 가득 담을 수밖에. 저렇게 물을 붓다 확 넘쳐버리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한 것은 언제나 지켜보는 이의 몫이다. 그것이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 어항에는 지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피 점프사’를 검색해 보면 무수한 누구들의 고민의 흔적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구피는 수면 위로 뛰어올라 제때 발견되지 못해 말라 죽는 경우가 꽤 많다. 뛰어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1) 놀라거나 - 사람이 갑자기 다가갔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튀어 오를 정도는 아니었다

(2) 수질이 좋지 않거나 - 완벽주의 성향의 아빠 덕분에 더러워지는 물은 절대 허용될 수 없었다

(3) 물 온도가 알맞지 않거나 - 위와 같은 이유

(3) 구피들끼리 다투거나 - 어쩌면?

(4) 수위가 높거나 - 가장 유력하다


아무튼 우리 집 구피들은 자주 물 위로 몸을 한껏 내던지곤 했다. 거실 바닥에 떨어져 파들거리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충분히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작은 접시에 어항 물을 담고, 가여운 아이를 물과 닿게 해야 한다. 안정을 취할 때까지 잠시 기다린 후 어항에 다시 넣어준다. 만약 움직임이 없다면 계속 툭툭 쳐줘야 한다. 대개는 그렇게 숨을 거두곤 하지만, 그럼에도 기적처럼 다시 꼬리를 슬렁슬렁 움직이는 아이가 간혹 있다. 그럴 때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어항에 넣어주며 말한다. “내가 밥 더 많이 줄게. 그만 나와. 여기 별거 없어.”


어느 날은 학교에 다녀왔는데 새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항 구석구석을 한참이나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 바닥 곳곳을 후레쉬까지 비춰가며 찾았는데, 단단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 갑자기, 불현듯, 어떤 불안감 하나가 집 안을 엄습했다. 불길한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더니, 나를 신발장으로 이끌었다. 어항은 거실에 있었기에 신발장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음에도 괜히 그쪽으로 발길이 가는 것이었다. 마치 어디서 하늘의 계시가 내려온 것 같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신발 하나가 있었고, 곧장 그 한 짝을 들어 밑창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큰 한숨을 내쉬고 나머지 한 짝도 들어봤다. 그곳에 있었다. 형태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납작해진 새우가, 거기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내리 울었다. 괜한 두려움으로 감히 그 사체를 치우지도 못한 채 신발 한 짝을 끌어안고 그렇게 울었다. 미안했다. 신발을 벗기 전에 바닥을 살펴봤어야 했나, 아빠가 어항 물을 가득 담을 때 더 말렸어야 했나, 어항 뚜껑은 필요 없다는 말에 아니라고 화를 냈어야 했나.


지금도 우리 집 직사각형 어항에는 열 마리의 어른 새우와 여덟마리의 청소년 새우가 산다. 물론 이 작은 녀석들이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그래서 내가 미처 세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새우들을 놀래키는 구피들도, 물을 가득 채우지도, 나름의 종이 뚜껑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모두 뛰어오르지 않고 평화로운 물속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가끔 어항에 얼굴을 들이밀 때면 깜짝 놀라 뒤로 점프하는 애들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면 무한한 사과를 건네며 잠시 멀어졌다가 슬금슬금 천천히 얼굴을 다시 비추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종종 그런 꿈을 꾼다. 어항에서 튀어나온 물살이가 거실 바닥에 펄떡거리고 있는,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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