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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다움 Feb 12. 2024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공백)

06. 취미

https://youtu.be/8Q5PkxVkHAc?si=aT1zt9xnekaSYdZD

♬ 꿈과 책과 힘과 벽 - 잔나비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내다보면, ‘취미를 적으세요’라는 질문 칸이 유독 많이 보인다. 진부해 보이긴 싫은데 가지고 있는 취미란 것들이 죄다 진부한 것들 뿐이라 속상해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책 읽기, 영화 보기, 글쓰기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다고 저 각각에 나만의 특별한 인사이트가 담긴 것도 아니다. 그냥 좋아할 뿐이다. 좋아하는데 일일이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한편으로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취미’에 대한 고정관념 탓일 수도 있다. 으레 ‘취미’라고 하면, 내가 최소한 얼마 정도의 시간을 들이고, 열정을 가져야만 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그래서 ‘아! 나 취미가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려다가도, 그런 생각들에 부딪혀 ‘아, 나 그정도는 아닌 것 같아’라며 주춤거리게 되는 것 아닐까.


실제로 어느 날엔가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남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텐데, 나는 내 시간과 마음을 들여 이렇게까지 하는 것. 그런 게 바로 취미라고. 친구에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일이 없다고 푸념하곤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자신은 하지 않지만, 나는 하는 행위들을 여러 개 짚어줬다. 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저 그런 일들로 하루를 심심하게 채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했던 행동들이 남들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A매치 축구 경기는 꼭 챙겨본다 하는 것들 말이다.


어쩌면,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는 일이 내 취미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만나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눴다. 기아 팬인 그와 두산 팬인 나. 단군 매치를 두고 가벼운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요즘 내 삶의 낙이라 할 수 있는 해외 축구, 특히 EPL 이야기까지 질리도록 나눴다. 같잖은 전력 분석도 좀 해보고, 나보다 훨씬 오래 좋아했기에 그 역사에 굉장히 빠삭한 그로부터 거진 강의 하나를 들었다.(그리고 으레 그래 온 것처럼, 대화의 끝은 언제나 짧은 한 마디였다. 운동해야지.) 친구는 군인이라, 다음 휴가 때는 같이 스크린 야구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 전까지 혼자 풋살 원데이 클래스도 듣고 오기로 약속한 것도 덤이다.


문득 얼마 전 만난 한 분의 질문도 떠오른다. ‘축구 좋아하세요?’라는 나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아, 축구 뛰세요?’라고 물어보던 그 이. 처음에는 마냥 어색하고 코믹하게만 느껴졌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이 점점 신선하게 느껴진다. 역시 해외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사고의 차이가 있나 보군, 가볍게 넘겨버릴까 싶다가도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한없이 막막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이렇게 사고의 지평을 넓혀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생각 하나가 있는데, 바로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초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초능력을 발현시킬 기회를 갖지 못해, 자신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예를 들어, 알고보니 나는 ‘봅슬레이’와 관련해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던 거다. 이를 테면, 내가 탄 썰매는 무조건 언제나 코너링이 안정적으로, 퍼펙트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거나, 무려 기록을 1초나 단축시킬 수 있는 막판 스퍼트 능력이 있다거나 등등. 하지만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봅슬레이를 타 볼 일이 뭐가 있겠냐는 거다. 정말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무한도전>, <홍김동전>, <놀면 뭐하니> 등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정말 버라이어티한 활동들을 하며 자신의 초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연예인이 될 수는 없으니,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다양한 경험치를 쌓아봐야겠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막힘 없이, 줄줄 대답하고, 어쩌면 ‘쉿- 비밀인데’라는 말과 함께 내가 가진 초능력을 덧붙일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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