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냉면
https://youtu.be/0zGDQ9r36p4?si=syU-EJE1MCUnL9qR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냉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의 어머니가 동네에서 냉면 가게를 하신다해도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솔직히 그렇지 않나? 어머니께 잘 보여야하는데(?) 막상 가서 냉면을 다 남기면 어떡하냐는 거지. 그런 내가 어쩌다 냉면을 먹게되었냐 하면, 우리 학교 학식으로 나오는 냉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났길래 궁금해졌을 뿐이다. 싱겁지만 뭐,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대학생이 되면 누구나 그 식습관 하나 정도쯤은 바뀌기 마련이다. 친구들이 다 먹으러 간다는데 혼자 빠지기도 뭐하고, 선배들이 밥을 사준다는데 새침하게 메뉴를 고르는 것도 뭐한 일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래서 바뀐 식습관이라 하면, 곱창과 깻잎을 좋아하게 됐다. 냉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기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뭐, 무더운 여름날, 가끔 생각나는 정도랄까?
아무튼, 그동안 내가 냉면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냉면을 후루룩 먹다 면이 목에 걸려 죽을까봐. 냉면의 면은 다른 면들 중에서도 유난히 미끌거리는 데다가 그 두께가 굉장히 얇다. 남들은 그 면의 특징을 오히려 좋아하며 후루룩 잘도 먹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다. 무섭다. 판모밀, 막국수와는 조금 다른 결이다. 일단 판모밀은 육수가 없어서 미끌거리지 않는다. 아무리 면을 빠르게 흡입해도 다른 면들까지 한번에 와구와구 몰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다. 막국수는 육수가 있긴 하지만, 워낙 면의 표면이 거칠어서 마찬가지로 미끌거림이 덜하다고나 할까.
언젠가부터 음식물이 목에 걸리는 상황을 자주 상상하곤 한다. 콩나물 무침을 먹다 목에 걸려 크게 기침을 했을 때부터인지(안 그래도 지난번에는 팽이버섯이 목에 걸렸는데, 그때부터 마라탕에 팽이버섯을 다섯 뭉치씩 넣는 오랜 습관을 버리고 두 개 정도만 넣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에 걸린 이물질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인지(어쩌다 랜덤하게 뜬 유튜브 숏츠 때문에 알게된 정보인데.. 이렇게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시청자로 하여금 무기력하게 수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튜브가 밉다), 그 뚜렷한 계기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3학년, 집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순간적으로 크게 사레가 들린 적이 있다. 뭘 먹고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기침이 마구 나오더니,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뭔가에 의해 가로막혀 아주 작은 틈새 사이로만 숨을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 하필 밤이라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서 목을 부여잡고 혼자 꺽꺽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숨을 쉬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 심연에 자리잡았다. 그러니 식도가 막히는 음식물, 그러니까 냉면에 대한 불안은 어쩌면 이 기억에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불안이 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매순간 음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것도 아니라 그리 불편하지도 않을 뿐더러, 덕분에 음식을 꼭꼭 씹어먹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 편히 냉면을 후루룩 빠르고 강하게 빨아당겨보고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