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짝눈
https://youtu.be/t37TtE0UntA?si=kZXOLb1JZHQCFd-7
우리 엄마는 스물 여섯까지 짝눈이었다. 양 눈 모두 진한 쌍꺼풀이 자리 잡고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빠와 결혼한 스물 여덟, 아홉 즈음부터 나머지 한 쪽의 쌍꺼풀도 진해졌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황소 눈’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워낙 큰 눈을 가진 엄마였기에, 짝눈 정도는 별 티도 안 났을 거다-실제로 엄마 사진을 보면 전혀 하나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눈은 그리 크지 않아 짝눈이 참 돋보인다. 어느 한쪽 눈-특히 왼쪽-은 짙은 쌍꺼풀로 한껏 커지는 대신, 다른 한쪽 눈-대부분 오른쪽-은 살이 눈을 짓누르는 듯한 형상으로 한없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양 눈에 균형 잡힌, 그것도 아주 짙은 쌍꺼풀을 가지고 계시기에, 분명 나도 유전학적으로 쌍꺼풀이 진해야 할 텐데 말이다. 어느덧 스물 여섯이 된 아직까지도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까뒤집어봐도 속쌍꺼풀만 보일 뿐이다.
사실, 짝눈이 되더라도 유독 왼쪽 눈에만 쌍꺼풀이 생기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바야흐로 초등학교 6학년,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으레 6학년이라 함은, 교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년이라는 이유로 뵈는 것 하나 없이 밀림의 왕마냥 학교에서 군림하던 시절을 뜻한다. 여자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라곤 순 같은 반 남자아이에 관한 것이나, 연예인 가십거리, 화장품 따위의 것들 뿐이었다. 한창 ‘화장’이라는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삼삼오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컴퓨터 사인펜으로 서로의 아이라인을 그려주던 그때 즈음 이었다. 어느 날에는, 진한 겉쌍꺼풀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딱풀과 실핀을 준비했다. 한창 다이소 쌍꺼풀 액을 사용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뭔가 나는 일회성의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때도 뭐 왼쪽 쌍꺼풀이 오른쪽 그것에 비해 아주 아주 살짝 더 진했을 때라, 오른 눈을 집중 공략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유튜브를 보며 따라했다. 그때의 여파로 내 오른쪽 눈 위의 살이 유독 더 처지고 무거워보이는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365일 내내 짝눈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더 문제다. 도저히가 익숙해지지 않는 내 얼굴인 것이다. 무쌍에 익숙해질만 하면 한쪽 눈에 쌍꺼풀이 생기고, 또 그 짝눈에 겨우 익숙해지려 하면 다시 무쌍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짝눈이 되는 날은 정말 100퍼센트 랜덤이다. 어쩌면 나의 몸은 이전부터 나름의 메커니즘으로 나를 괴롭히며 제발 알아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렇다. 엄마는 게으른 나를 이참에 잘됐다며, 잠을 많이 자는 날엔 쌍꺼풀이 몽땅 사라지거나 짝눈이 생기는 거고, 잠을 좀 덜 자야 양 눈에 안정적인 쌍꺼풀이 생기는 거라 말하시지만,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아주, 가끔, 운이 좋은 날이면 두 눈 모두에 겉쌍꺼풀이 조금 진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짝퉁 나이키’라며 내 눈이 세모나다고 놀렸던 적이 있는데, 그 세모난 눈이 유일하게 안정적인 곡선을 그리는 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물론 그중에도 일어난 지 5시간 만에 양쪽 모두 달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흠흠 콧노래를 부르곤 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이라도 어디든 밖으로 나가려 하는 편이다.
반대로 어쩌다 정말 심한 짝눈으로 눈을 뜨게 되는 날이면, 나름의 방법을 써보곤 한다. 눈두덩이를 계속 비빈다거나, 눈꺼풀을 집게 손가락으로 들어 눈을 한참이나 치겨뜬다거나, 눈꺼풀을 바깥쪽으로 쭉 스트레칭 한다거나 등등. 주변에 짝눈인 친구들도 참 많고,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도 짝눈이지만, 아무래도 내 짝눈은 매일 매일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점과 원체 눈의 모양 자체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오락가락, 들쭉날쭉 짝눈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안정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