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꽤다움 Jan 08. 2024

스파이더맨은 참 멋있는데 말이죠

01. 거미

https://youtu.be/wKHAhLTF0hQ?si=VhPn6x-FhkHsQDXA

♬ 날 그만 잊어요 - 거미


누구나 저마다 본인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선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테다. 이를 테면 귀신이라든가, 비둘기, 바퀴벌레 같은 것들. 그게 나한테는 ‘거미’다. 난 세상에서 거미가 제일 무섭다. 싫은 게 아니라 정말 무섭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만약 거미가 내 방에 나왔다? 일단 첫 10분은 울고, 20분 동안 스스로와 대화를 한 뒤, 밀대를 가지고 와 30분 간 그와 대치한다. 그렇게 거미 하나를 마주치면 모든 상황이 해결되기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를 떨쳐내고 싶어 ‘해리포터(아라고그, 보가트로 등장 - 방금 이름 찾다가 사진 나와서 토할 뻔 했다)’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열심히 보곤 했는데, 하등 쓸모 없는 일이었다.


내가 거미를 무서워하게 된 이유는 꽤 여러가지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뭐랄까, 다른 벌레들과 다르게 거미는 죽이기 어려워서다. 어렸을 때, 아빠는 집에서 거미가 나오면 매일 종이를 써서 걔를 살려주시곤 했다. 한 마디를 덧붙이시며. 거미는 죽이면 지옥 가. 그때부터 내게 거미는 ‘잡으면(죽이면) 안 되는 것’이었고, 이 명제는 시간이 지나며 ‘잡을(죽일) 수 없는 것’에서, ‘잡지(죽이지) 못하는 것’으로 바뀌어왔다. 그러니까, 거미가 나와도 해치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해서만 서술해보겠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어린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줬던 이야기다. 이를 듣는다면, 거미에 대해 아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일지라도 한 순간에 거미 공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원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빠르게 다음 단락으로 눈을 옮기길 바란다. 영어학원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다.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어느 날 밤, 얼굴이 무척이나 가려운 것을 느끼셨다고 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잠에서 깬 그는 얼굴을 벅벅 긁었고, 그 간지러움이 잠시 옅어둔 틈을 타 다시 빠르게 잠에 들었다. 이후 아침에 일어난 그는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글쎄. 두툼하면서도 시커먼 거미 다리 한 개가 대롱대롱 입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활자로 이 이야기를 써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끔찍하다. 글자 하나하나를 쓰기 위해 온 신경을 그 이야기에만 둬야 하는 것도, 글을 생생하게 풀어내기 위해 이야기의 상황을 상상으로 그려내야 하는 것도.  어쨌든 이 이야기도 내가 ‘거미’를 무서워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렸을 때, 목재 전시물들로 가득한 야외 행사장에서 아빠와 술래잡기를 했다. 아빠를 잡으로 전시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던 때였다. 나무로 만든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 마냥 좁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 넓지는 않았던, 그 사이로 달려나갔는데.. 다들 ‘거미줄’ 하면 으레 떠올리는, 완전한 팔각형의 이상적인 그 모양, 완벽에 가까운, 가장 ‘거미줄’ 다운 거미줄이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급 브레이크를 걸어 한참 달리는 발을 멈추기엔 늦은 거리였다. 그렇게 나는 거미줄에 골인했다. 울고 불며 엄마에게 달려가 분명 내 몸 어딘가에 거미가 있을 테니 제발 잡아달라고 애원했다. 거미의 부재가 불러온 다행이었는지, 거미의 실종이 불러온 불행이었는지, 거미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종종 그때 그 찾지 못한 거미가 내 몸을 기어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루는 친구들에게 바로 위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도 그런 경험으로 거미를 무서워한다며 내 이야기에 적극 공감을 표해줄 줄 알았는데, 웬걸 다들 거미가 불쌍하다고 했다. 거미는 즐거운 마음으로 잠시 외출을 나갔을텐데, 돌아와보니 집이 사라져있다니, 그게 무슨 날벼락이라고 한다. 하긴 요즘 모두가 집, 집, 집에 목을 매는 세상인데, 누군가 자신의 집을 홀라당 해먹었으니. 다 지은 집을 보고 한참을 뿌듯해했을 텐데. 몇 날 며칠을 꼬박 고생해야 할 거미가 퍽 안타깝고 미안해진 건 처음이었다. 그 때 이후로 다음에 다시 거미를 마주친다면 기필코 용기를 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 화장실 욕조에서 거미를 마주쳤고, 나는 역시나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 문에 무릎을 박고 푸른 멍이 들었다.

이전 01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