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거미
https://youtu.be/wKHAhLTF0hQ?si=VhPn6x-FhkHsQDXA
누구나 저마다 본인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선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테다. 이를 테면 귀신이라든가, 비둘기, 바퀴벌레 같은 것들. 그게 나한테는 ‘거미’다. 난 세상에서 거미가 제일 무섭다. 싫은 게 아니라 정말 무섭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만약 거미가 내 방에 나왔다? 일단 첫 10분은 울고, 20분 동안 스스로와 대화를 한 뒤, 밀대를 가지고 와 30분 간 그와 대치한다. 그렇게 거미 하나를 마주치면 모든 상황이 해결되기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를 떨쳐내고 싶어 ‘해리포터(아라고그, 보가트로 등장 - 방금 이름 찾다가 사진 나와서 토할 뻔 했다)’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열심히 보곤 했는데, 하등 쓸모 없는 일이었다.
내가 거미를 무서워하게 된 이유는 꽤 여러가지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뭐랄까, 다른 벌레들과 다르게 거미는 죽이기 어려워서다. 어렸을 때, 아빠는 집에서 거미가 나오면 매일 종이를 써서 걔를 살려주시곤 했다. 한 마디를 덧붙이시며. 거미는 죽이면 지옥 가. 그때부터 내게 거미는 ‘잡으면(죽이면) 안 되는 것’이었고, 이 명제는 시간이 지나며 ‘잡을(죽일) 수 없는 것’에서, ‘잡지(죽이지) 못하는 것’으로 바뀌어왔다. 그러니까, 거미가 나와도 해치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해서만 서술해보겠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어린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줬던 이야기다. 이를 듣는다면, 거미에 대해 아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일지라도 한 순간에 거미 공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원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빠르게 다음 단락으로 눈을 옮기길 바란다. 영어학원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다.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어느 날 밤, 얼굴이 무척이나 가려운 것을 느끼셨다고 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잠에서 깬 그는 얼굴을 벅벅 긁었고, 그 간지러움이 잠시 옅어둔 틈을 타 다시 빠르게 잠에 들었다. 이후 아침에 일어난 그는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글쎄. 두툼하면서도 시커먼 거미 다리 한 개가 대롱대롱 입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활자로 이 이야기를 써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끔찍하다. 글자 하나하나를 쓰기 위해 온 신경을 그 이야기에만 둬야 하는 것도, 글을 생생하게 풀어내기 위해 이야기의 상황을 상상으로 그려내야 하는 것도. 어쨌든 이 이야기도 내가 ‘거미’를 무서워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렸을 때, 목재 전시물들로 가득한 야외 행사장에서 아빠와 술래잡기를 했다. 아빠를 잡으로 전시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던 때였다. 나무로 만든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 마냥 좁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 넓지는 않았던, 그 사이로 달려나갔는데.. 다들 ‘거미줄’ 하면 으레 떠올리는, 완전한 팔각형의 이상적인 그 모양, 완벽에 가까운, 가장 ‘거미줄’ 다운 거미줄이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급 브레이크를 걸어 한참 달리는 발을 멈추기엔 늦은 거리였다. 그렇게 나는 거미줄에 골인했다. 울고 불며 엄마에게 달려가 분명 내 몸 어딘가에 거미가 있을 테니 제발 잡아달라고 애원했다. 거미의 부재가 불러온 다행이었는지, 거미의 실종이 불러온 불행이었는지, 거미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종종 그때 그 찾지 못한 거미가 내 몸을 기어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루는 친구들에게 바로 위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도 그런 경험으로 거미를 무서워한다며 내 이야기에 적극 공감을 표해줄 줄 알았는데, 웬걸 다들 거미가 불쌍하다고 했다. 거미는 즐거운 마음으로 잠시 외출을 나갔을텐데, 돌아와보니 집이 사라져있다니, 그게 무슨 날벼락이라고 한다. 하긴 요즘 모두가 집, 집, 집에 목을 매는 세상인데, 누군가 자신의 집을 홀라당 해먹었으니. 다 지은 집을 보고 한참을 뿌듯해했을 텐데. 몇 날 며칠을 꼬박 고생해야 할 거미가 퍽 안타깝고 미안해진 건 처음이었다. 그 때 이후로 다음에 다시 거미를 마주친다면 기필코 용기를 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 화장실 욕조에서 거미를 마주쳤고, 나는 역시나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 문에 무릎을 박고 푸른 멍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