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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i Dec 18. 2023

[치앙마이] 모두가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유

처음엔 이렇게 오래 있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처음 계획은 2주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간다. 호스텔에 지내다 보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지만 헤어지지 않는 사람은 바로 호스텔에서 일하는 태국인 친구들이다. 그중에 한 친구와 무척 가까워졌다. 태국인 여자, 28세, 샤샤. 별달리 하는 일 없이 지내는 나는 숙소에서 그 친구와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거나 그 친구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따라가곤 했다.


물론 이곳에 오래 묵는 친구들도 있다. 길어봤자 일주일이 안 되는 시간이겠지만 그중, 나보다 이틀 먼저 온 한국 사람이 있다. 우리는 같은 방 맞은편 침대이다.


이름은 준희, 한국인 남자 24세 190cm. 우리는 뚱희의 라고 부른다. 그가 보통 하는 일은 3시쯤 부스스 일어나 밥을 먹고 헬스장에 간다. 그리고 돌아와 밥을 먹고 클럽에 간다. 일찍 돌아오는 날은 새벽 2~3쯤, 늦으면 아침이 넘어서야 들어온다. 한 달가량을 그렇게 지내던 준희가 떠날 날을 앞두니 갑자기 투어에도 다녀오고 쿠킹클래스도 듣는단다. 타지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 남동생 같은 느낌이다. 매일 숙소에 돌아와 침대 맞은편 바닥에 앉아 나에게 하루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덩치는 산만한데 웃는 게 귀여운 그런 친구이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독일 친구. 루카스. 숙소에 들어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누구보다 해맑은 웃음에 오지랖이 상당하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부분의 시간은 일을 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 친구가 쳐져있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웃는 모습이 내가 알던 사람과 많이 닮아서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조깅을 하며 3년 전 스타트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나의 새벽을 함께 열어주는 친구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바깥 의자에 앉아있었던 캐나다 할아버지, 나이는 미상, 칼. 중간에 다른 도시에 갔다가 다시 오셨다. 칼 할아버지도 우리의 새벽 친구이다. 3개월 정도 일을 하고 모은 돈으로 나머지는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끝날 틈이 보이지 않아서 지난번엔 두 시간가량을 붙잡혀있었다. 하지만 상냥하고 좋은 사람.


오늘 오후 칼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금요일에는 루카스, 토요일에는 준희가 떠난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겠지. 나는 아직 확실한 계획은 없다. 다만 태국 남부 섬과 인도네시아 발리를 가고 싶다는 생각 정도. 사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보자 싶다. 나를 붙잡아두는 것은 다른 것보다 사람이다. 비록 혼자 남겨지지만 혼자 남겨지지 않는 곳. 치앙마이가 그런 곳인 것 같다.


그곳이 어디이든 나는 또 사람들을 만날 테고, 헤어짐이 두려워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겨지겠지. 오늘 아침에도 함께 뜨는 해를 바라보았다. 며칠뒤면 혼자 이곳에 남겨질 생각을 하니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그래서 오늘을 더 즐겨야지. 분명 내가 앉은 이 자리에 또 다른 사람들이 앉아 다른 이들을 기다리겠지.


모두가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유.


오늘도 옆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내가 무슨 말을 적고 있는지 이 친구들은 아마 아무런 생각이 없을 테지만, 나는 이렇게 옆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글을 적고 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잠시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지금 옆에 칼 아저씨가 와 있다. 이렇게 적어서 이 시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오늘 이렇게 셋이 보내는 마지막 아침. 그리울 것 같기도 하고, 금방 잊힐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순간들이 모여서 나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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