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만남
결국은 두 달을 끝으로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을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나는 꽤나 행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서의 두 달 살기 후 내가 얻은 것들은 많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요가와 만남이 아닐까 싶다.
요가. 치앙마이로 많이들 요가수련을 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의 목적도 그러했다. 처음 등록한 요가원이 마음에 들어서 두 달 내내 한 곳만 다녔다. 몇 명의 선생님이 있었고, 첫 주에는 매일 수련을 하며 어떤 수업이 나와 가장 잘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꽤나 행운이었던 것은 단박에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이름은 '메이', 가녀린 몸에 가만히 있어도 복근이 도드라졌고, 상냥한 미소와 활동적인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수업은 한 시간 반정도 진행이 되는데 '메이'의 수업은 두 시간이 넘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녀 자체였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메이'의 아침 수업은 화, 목, 토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3번 진행이 되었고, 첫 주 이후로는 줄곧 메이의 수업만 갔다. 다른 수업보다 수련 시작 전, 호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었고, 암밸러스, 백밴딩, 스플릿 등 모든 요가 동작을 수련했으며 언제나 심화된 동작들을 서포트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나의 몸을 느낄 수 있었고, 세계 각지에서 온 요가 강사 혹은 요가 수련자들과 함께하고 있자니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물론 가끔은 쉬고 싶을 때도,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막상 두 시간가량의 수련을 끝내고 나면 항상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남.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내가 정한 숙소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만났던 한국인. 24살의 남자. 준희였다. 나보다 하루인가 이틀 먼저 와있다고 했던 준희는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헬스장에 갔다가 클럽에 가서 새벽 늦게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방을 썼고 침대도 앞뒤로 있다 보니 마주치는 때마다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처음 만남에서는 세상 공손한 말투로 내가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던 것에 반해 몇 주가 지난 시점부터는 세상 편한 사이가 되었다. 가끔 준희가 다음날 오후까지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걱정이 되어 엄마처럼 문자로 생존확인을 하기도 했고, 태국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거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독일인. 29살의 남자. 루카스. 내가 치앙마이에 온 지 2주 정도 뒤에 온 것 같다. 전에도 온 적이 있었다는 친구. 루카스가 온 다음날 새벽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새벽 5시. 조깅을 하러 간다던 루카스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루카스가 지내던 2주가량, 나와 함께 새벽을 열어주었고, 많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존재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가 떠나기 며칠 전부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어 마지막날에는 새벽에 떠나는 그를 배웅하기도 했다.
그 전날 식당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편인데도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그렇게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그리고 2주 뒤, 루카스는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후에는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대화도 더 많이 나누었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떠나게 되었다. 내가 떠나는 날, 루카스는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는 길에 그가 작은 용과 큰 판다의 여행이야기를 아는지 물었다.
큰 판다가 물었다. "여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정일까 목적지일까?"
작은 용이 대답했다. "동행자"
나는 한 달쯤 뒤에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안다. 요가와 만남, 그리고 여행. 동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