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놓고 온 건 마음이었을까
내가 치앙마이를 떠난 것은 두 달 전 즈음. 다시 올 생각은 있었지만 항상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나의 물건들을 놓고 떠나왔다. 굳이 없어도 되는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다시 돌아갈 의지를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물건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놓고 온 내 마음을 찾으러 치앙마이로 돌아갔다.
발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부터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지냈던 시간은 두 달 남짓, 그 사이에 나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낯설지만 익숙한 공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기다릴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Home Sweet Home.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한 치앙마이의 공항. 밖에는 보름달에 가까운 듯한 밝은 달이 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을 테지만 그마저도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공항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에는 여전히 태국 친구 ’ 샤샤‘가 일을 하고 있었다. 창 너머로 그녀를 발견하니 미소가 절로 퍼졌다. 익숙한 곳에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하루 동안의 일정이 전혀 피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옆에 앉아서 한참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났으나 마음은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독일 친구, 루카스가 새벽 일찍 도착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캄캄한 골목에 콧노래를 부르는 일행을 태운 썽태우가 들어섰고, 우리는 두 달 만에 재회했다. 시간을 돌아서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있게 된 모양새가 우리 스스로도 놀라웠고 그래서인지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축하했다.
약 2주의 시간. 매일 아침 일어나 커피를 마시거나 가끔은 공원까지 조깅을 했고, 낮시간에는 보통 카페에 가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하루의 일과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 루틴. 주말이면 치앙마이 외곽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며 평소보다는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또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다지 슬프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 목적지가 같기 때문이었다.
필리핀의 섬, 시아르가오
작년 말, 나의 비전보드의 여행 파트에 적어놓았던 여행지. 요즘 모든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많이도 망설이다가 떠나기 이틀 전에야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래서 가장 비싸지만 가장 오래 걸리는 여정에 당첨이 된 것이다. 오랜 여행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 이제 혼자서는 여행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함께 여행을 마무리해 줄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날 아침, 새벽 4시 반쯤 루카스를 먼저 공항으로 보냈다. 나는 태국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오후 비행기로 필리핀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페리를 2번 갈아타는 일정 끝에 도착할 수 있었던 필리핀, 시아르가오. 하지만 나는 이때 알았을까, 그 모든 것이 가치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