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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왜 병원 생각이 안 날까

한숨 자면 나아질 거야

by Dahi



긴 여행을 끝내고 포르투갈로 돌아온 지 3개월.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아진 것도 없었다. 강아지들과 매일 아침 뒷산을 오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그도 아니면 작지만 위로 우뚝 솟은 3층짜리 집을 이유 없이 오르락거렸다. 어느 날 아침, 내리막을 걷다가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 울퉁불퉁한 유럽 시골의 돌바닥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리막을 서둘러 내려가던 반려견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추운 날씨에 몸이 굳어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혹은 그저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이리라.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통증에는 충분히 단련되어 왔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제껏 병원 신세를 져 본 적도, 몸에 걱정할 만한 문제가 생긴 적도 없었던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색다름이었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픔이 밀려옴과 동시에 나의 급정거로 강아지들의 목줄을 황급히 당겼다는 미안함이 따라왔다. 그대로 앉아있을 수도, 집으로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방금 집에서 나온 참이었다. 그래 별거 아니겠지 하며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내리막을 내렸다. 걸을수록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렇게 평소처럼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그 후로 일주일은 뒷산을 오르지 못했다. 뒷산은커녕 집안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벅찼다. 가끔씩 나를 멀뚱하니 바라보는 반려견들의 시선에 못 이겨 산책을 나가긴 했으나 신랑에서 매번 꾸중을 들어야 했다. 매일 하던 요가도 멈췄다. 왼쪽 발목보다 유연했던 오른쪽.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의 3개월 비자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나의 발목은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 든 생각이지만, 나는 왜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이제껏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아픈 적이 없어서인지,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절로 낫겠지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저. 절.로 나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의 삶의 질도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왼쪽보다 유연했던 오른쪽 발목은 왼쪽 발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굳어있었다


고지식함을 넘어선 고집. 어릴 적부터 그랬다. 누가 봐도 똥고집. 그래서였을까?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나를 병원에 잘 보내지 않았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 엄마가 나를 병원에 잘 보내지 않았기에 이런 고집이 생긴 걸까. 흐릿한 기억들 속에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까 뜨겁게 열이 오른 몸으로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나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는 직전에 마늘을 썰었던 걸까? 내 이마를 짚던 손 언저리에서 마늘향이 풍겼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한숨 푹 자면 나”


그 후로 나는 병원보다는 잠을 찾는 편을 택했다. 마음이 아플 때는 평소보다 더 오래 잠을 잤다. 달아나려는 잠을 붙들고 붙들어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나는 정해진 시간에 낮잠을 잤다. 병원을 예약한 사람처럼 늦지 않게 침대를 찾았다. 발을 다치고 나서 낮잠을 좀 더 오래 잤다. 그러다 문득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잠을 잔다고 해도 저.절.로 낫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아무 곳에도 없는 기분에 이곳으로부터 달아나야겠다고, 세상으로 다시 뛰어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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