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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속으로

비엔나 근교, 멜크 수도원은 비엔나 여행이 필수 코스

by 비엔나 보물찾기

기호학의 대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대학 시절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는 것이 나름 유행이었던 때가 있어, 서점에서 '푸코의 진자', '장미의 이름'을 사 읽은 기억이 있다. 특히 '장미의 이름'은 첫 부분에 중세 교회사 부분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고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소위 수불석권하는 상태에 이를 정도로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다. 스토리 구성이 너무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있다.


주된 내용은 중세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의문의 살인사건 전말을 파헤쳐 가는 것인데, 읽다 보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만큼이나 심장이 짜릿짜릿해지고 그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련의 의문의 살인사건은 중세 교회에서 금독서로 정한 책을 몰래 읽어보던 수도사들이 책장을 넘기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과정에서 금독서를 못 읽게 하려던 수도회가 발라 놓은 독이 원인이 된 것이고, 이를 주인공이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망한 수도승들의 혀가 모두 파랗게 변했던 사실을 간파하면서 알아낸다.


멜크수도원이 이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중세 수도원의 장서고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어서 남기지 못하지만 중세 고서들이 모여 있는 수도원 도서관이 주는 위엄은 엄청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소설에 아드소라는 수련사는 멜크 수도원 출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당시 워낙 유명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인화(본명 류철균)가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구성이 장미의 이름으로와 거의 유사해서 표절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다. '영원한 제국'은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시경 빈풍편에 나오는 시를 둘러싼 의문의 살인사건, 정조 독살설에 대한 소설이었다.



멜크 수도원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비엔나 국립도서관과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의 롱룸 도서관과 비교했을 때 중세 고서적들이 아주 높은 서고에 꽂혀 있는 것과 오크색의 나무가 주는 무게감은 비슷하지만 거기에 수도원이 주는 엄숙함과 경건함이 보다 더 배어있다.

*출처: 멜크수도원 홈페이지
왼쪽은 비엔나 국립도서관, 오른쪽은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 롱룸 도서관

'장미의 이름'의 배경지, 멜크 수도원을 가다


멜크 수도원은 비엔나에서 차로 약 5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기차로도 갈 수 있다. 비엔나에서는 기차로 1시간 15분, 잘츠부르크에서는 2시간 반쯤 소요된다.

비엔나에서 멜크 수도원을 가려면 빈 서부역(West Bahnhof)에서 멜크역으로 가야 한다. 멜크역에 내리면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수도원에 다다른다.

*출처: 멜크수도원 홈페이지


멜크 수도원을 소요하다

멜크 수도원을 들어서면 열쇠가 서로 교차돼 있는 문양이 보이는데 멜크 수도원 상징이다.

멀리서 보이는 수도원 전경, 그 입구를 들어서면 보다 더 선명해지는 진한 노란색 파스텔 톤은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만 쓸 수 있었던 색이라고 한다. 그 말은 멜크 수도원이 합스부르크 왕가와 관련 있는 건물임을 뜻한다.



입구에 'ANNO MDCCXVIII'이 보인다. 유럽의 건물들을 보면 저렇게 건물을 건축하거나 리노베이션 한 날짜를 쓴다. ANNO는 서기(AD)란 뜻이고, M은 밀레이넘의 약자니 1천이란 뜻이다. D는 천의 절반 즉 5백, C는 센추리 100인데 C가 둘이니 200, X는 10, VIII은 8. 이렇게 해석하면 서기 1718년에 완공 또는 개축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저런 디테일을 보는 것도 유럽의 건물을 보는 재미 중 하나이다.


멜크 수도원에서 보는 마을 전경

수도원은 속세(?)와 떨어져 종교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의도, 또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감시(?)하려는 의도 등이 반영되어 마을에서 보면 아주 높다란 언덕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멀리 다뉴브강 지류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빨간색 지붕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보노라면, 마치 체코의 동화마을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오르게 만든다.


멜크 수도원 도서관을 나오면 마을과 멜크 수도원의 핵심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이다.


멜크 수도원을 돌아 나오는 길에 보이는 큰 항아리인데, 물이 살짝 넘칠락 말락 하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멜크 수도원 옆 정원도 한번 거닐어 보면 좋다. 한 켠에 있는 건물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좋다.



멜크 수도원은 바하우(Bachau) 지역의 한쪽에 있다. 바하우 지역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자연경관인데, 멜크수도원이 있는 멜크부터 크렘스까지의 도나우 강변이다. 특히 바하우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데, 도나우강과 계단식 포도밭은 가을 이면 노랗게 빨갛게 단풍 든 모습이 절경이다.


가을에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단연코 차를 렌트해서 바하우 지역에 가서 거닐어 보기를 권한다. 포도밭, 도나우강, 뒤른슈타인성, 푸른 교회 등이 어우러진 이곳은 말 그대로 세계 자연경관이다.


당일로도 충분하니 오스트리아에 머물 동안 하루의 시간을 내어보는 여유라면 오스트리아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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