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61)

장마 비의 추억

by 시우

아이랑 베란다에 앉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어렸을 적 생각이 많이 나기 시작한다, 서울에서의 할머니와 사는 게 끝이 나고 아버지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와 2층짜리 주택에 세를 들어 살았다 평수로 치면 20평 남짓이었을까? 방 두 개에 코딱지만 한 거실과 부엌 그리고 조그만 화장실 하나 그리고 어두 침침한 방안의 불빛 할머니와 사는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나에게는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추후에 또 이야기를 하게 될 거 같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뤄본다)


지방도시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집은 당연히 집 근처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논과 밭이 보이고 저수지도 있었다. 지금은 개발이 더 많이 되어 아파트 단지도 들어서고 산책 코스가 만들어졌지만 그때는 나에게는 참 신선한 장소였다, 서울서 살 때에는 이런 거 보기가 어디 쉬웠는가?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세네 명이서 몰려서 저수지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장맛비가 한참 내리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또 동내 아이들 몇몇과 같이 저수지로 가다가 비가 내려서 홀딱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옷까지 다 젖어 찝찝했어야 했을 그 순간마저도 어쩜 그렇게 웃음이 많이 나왔었는지, 논두렁 밖에서 튀어나온 두꺼비를 잡아다가 키운다고 1층 주인집 마당 앞에 풀어놨었는데 며칠 후에 어디론가 사라진 두꺼비


그리고 아버지와 휴가 때 거실에 나있던 커다란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면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동생과 누워서 잠들었던 것들이 다 추억이 되었다 지붕의 처마 끝을 따라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둥번개가 쳐서 깜짝 놀라 하면 안아주신 아버지의 몸에 밴 담배 냄새도 마저도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공주님을 안아보고 냄새를 맡아본다, 아직도 아이의 몸에서는 뽀송뽀송한 햇살 냄새가 나서 여전히 마음을 따듯하게 만든다


"아빠 숨 막혀요... 그만 OO이 죽어요."


"공주님은 아빠 냄새가 나요? 어때요? 안 좋은 냄새나요?"


살짝 풀어주고 물어본다 아이는 과연 나에게서 어떤 냄새를 기억을 할까?


"아빠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요."


"아니 그게 뭐예요 향기로운 냄새? 샴푸 향? 비누향? 아빠는 담배 안 피우니까 담배 냄새는 안 날 거 아니에요."



아직은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아마 좀 더 크고 나면 너도 아빠를 어떤 방식으로든 추억하겠지

아이를 뒤에서 안아주며 창 밖을 계속 본다 한 20분을 이러고 있으니 좀이 쑤신 지 일어나 유튜브를 보겠다고 선언을 하고 거실에 앉아 태블릿을 꺼내 능숙하게 영상을 재생한다


어디 숨었지? 안보여


"조금만 봐요, 눈 나빠지겠어요, 이렇게 조금만 쉬었다가 밥 먹게요."


"오늘은 치킨 먹으면 안돼요?"


"아빠가 해주는 밥 맛없어요?"


"아니요 그냥 밥 먹어요."



당황해하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싶지만 치킨을 안 먹은 지 2주도 넘었으니



"에잇. 까짓것 오늘 치킨 먹읍시다!"


"진짜요? 아빠 감사합니다!"



진짜 밥이 별로 맛이 없나 싶었지만 그래도 딸이 기뻐하니까 오늘은 치킨을 먹기로 한다 주문을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공주님 아빠 치킨 찾아올게요."


"다녀오세요!"



현관까지 쪼르르 달려와 인사하고 안긴다 이 맛에 딸 키우나 보다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지만 그까짓 게 뭐가 대수이겠는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게 이런 거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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