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80)

나팔꽃

by 시우

가을이 오면서 키우던 나팔꽃 덩굴이 말라가기 시작한다, 날씨가 추워진 탓도 있겠지만 덩굴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줄기를 뻗을 자리가 없어서 인지 힘없이 아래로 다시 쳐진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면서 서로 얽히더니 어리고 연약한 것들은 벌써부터 잎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말라죽어간다


아침 그 바쁜 시간에도 어찌 한번 나팔꽃을 피워보고자 물을 주고 출근을 하는데 꽃은 기별이 없어 이제 그만 키워야 하나 싶을 찰나에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친구 와이프가 나팔꽃을 나보다 먼저 발견하고 알려준다


"나팔꽃이 진작 피었나 보네요 아침에 바쁘셔서 제대로 못 보셨나 보다."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그 소리에 얼른 일어나 보니 정말로 파랗기도 하고 보랏빛 같기도 한 나팔꽃이 조그마하게 피어있는 게 보였다 공주님도 , 친구의 딸들도 베란다로 뛰어나와 꽃을 본다 다이소 표 좁은 화분에 얼기설기 자리를 잡더니 드디어 꽃이 피었구나 싶어 퍽 감동스럽다


꽃을 보고 있으니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의 고생이 보람으로 변해 행복하다 같이 길렀던 토마토는 큰 키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져서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 주려다가 부러져버리는 통에 완전히 죽어 버렸고 나팔꽃은 줄기가 올라갈 만큼 지지대를 길게 새워줄 수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나라도 꽃을 피워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식물을 키우면서 아이도 나도 참 배운 게 많은데 이제 추운 겨울이 되면 꽃은 시들고 씨앗을 남긴 채 내년 봄을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내와의 소송도 이제 8개월 차에 접어든다, 아내는 아이 안부 역시 여전히 묻지 않고 본인의 시간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람이 어쩜 그렇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겨우 이 정도 인가라는 생각에 안쓰럽게 느껴진다


친구 내 가족이 놀러 와 예전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친구 와이프에게 전달되었고 그걸 들은 나는 한편으론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걸 이 사람들에게 이야기까지 했을까란 씁쓸한 감정까지 생기게 되었다


키즈카페에서 동생들과



잘못이란 게 결국 상대적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싸운다, 서운했던 마음의 크기를 서로 알 수가 없기에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반복하며 서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인간들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다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집에서 싸우는 순간들은 늘어가고 대화의 횟수가 줄어든다


답답한 일상이 숨 막히는 일상으로 변하고 서로의 생각은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은 채 그렇게 사는 부부들도 이혼하는 부부들도 생기리라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추웠던 겨울부터 시작했던 이혼이라는 길이, 다시 추워지는 날이 돌아올 때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보다 감정적인 무뎌짐이 더 가슴이 아프다 아내의 빈자리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무뎌짐 끝에 진짜 이별이 존재하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빠 엄마는 왜 집에 안 들어와요?"


"많이 바쁜가 봐요."


"거짓말 할머니 집에 가있는 거잖아요."


"......"


아이에게는 아직 이 이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오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많은 말들이 들려온다, '아이를 생각하면 다시 합쳐라.' '아니다 집 나가본 사람은 본인 힘들 때면 또 도망칠 거다 그냥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갈라서라.'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 아빠가 엄마보다 더 잘 키울 거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날개 단거다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수많은 말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결국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것이 내가 정답이 없는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최선을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keyword
이전 01화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