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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장기 복무 낙방 그리고 백수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동생을 보며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1년 후 상급 부대 사령부 인사과에 발령이 났고, 그곳에서 지난 강 과장님에게 배운 행정 업무를 마음껏 발휘하며 선배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러던 중 장기 복무 신청 시간이 다가왔기에 나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군 생활 5년간 한 번도 사고 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선배 기수 중에 임용 평가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장기 복무 신청에서 떨어진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가시험에서 성적이 안 좋아도 장기 복무에 합격하거나 진급을 위해 전방 부대에 지원하여 열심히 근무하는 선배들도 있었기에 나는 더욱 내 합격을 확신했다. 각종 시험이나 근무 평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웬만한 시험에서는 남들만큼 성적을 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급 부대에서 상급 부대 인사행정처에 발령 받아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장기 복무에서 떨어졌다. 어쩌면 나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직감했음에도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2002년부터는 임용 평가시험, 부사관 근무평가, 부사관 능력평가 같은 시험이 매우 엄격해졌고, 현재는 입대할 때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입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동기 중 한 명은 나와 성적이 비슷했으나, 당시 장기 복무를 신청하지 않고 1년 연장을 선택했다. 이후 신중한 고민 끝에 장기 복무를 결정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무작위로 전역되는 현역들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에도 직업군인이라는 비전을 갖고 노력했다고 한다. 상관과 면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끝에 1년을 더 연장한 후, 군과 사회 분위기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장기 복무에 신청하여 합격했다.


  한편, 나는 지원하면 반드시 합격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충분히 신중하게 고민한 결과였고, 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역 명령서를 받고 나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군대에서 펜을 들고 공문서를 작성하는 행정 업무만을 가진 나는 사회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계획도 준비도 없이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사막 중간에 내려진 기분이었다.


  집에 가니 가족들의 상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동생을 보며 누가 좋아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부사관 행정 직렬을 내 손으로 직접 전역 명령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정상인이라고 보겠는가? 가족은 내가 장기 복무신청에서 떨어져 전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성적이 안 좋아서 낙방한 이유를 모르는 상황에서 불편한 침묵만 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감을 상실했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뭐 먹고 살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매일 저녁 인터넷으로 직업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예전에는 군대 가기 전에 꿈꿨던 심리 코칭 컨설턴트 강사라는 직업을 가끔씩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신감도 많이 상실했고, 군인의 직업을 가졌다가 갑작스럽게 백수가 된 충격으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형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추천해 줬다. 나는 너무도 생소한 ‘요리사’란 직업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정보를 찾았고, 내 환경에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강사의 직업을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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