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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수치심 깨트리기 훈련 효과 2

훗날 이 일이 강사가 되고자 하는 자기개념이 명료했다.

   나는 요리사 일을 정리하기 위해 한 달 전에 점장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점장은 내가 용접 일을 하는 것보다 요리사 일을 계속하길 바랐다. 내가 양식 파스타 요리를 하면서 많은 단골손님, 특히 양식을 좋아하는 여성 고객이 많이 찾아와 줬기 때문이다. 내가 휴무인 날이면 손님들은 주방장이 바뀌었냐고 물을 정도로 내 요리는 인기가 많았다. 점장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은 내 요리 재능을 썩히는 게 아깝다고 말할 정도였다.

  

   퇴사하기 2주 전, 나는 점장에게 퇴직금에 대해 이야기했다. 퇴직금은 법적으로 2주 안에 지급되어야 하며 점장이 아닌 사장이 지급하기 때문에, 날짜가 미뤄지지 않도록 퇴사 날짜를 다시 한번 언급했다. 퇴직한 후에는 한백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창원으로 바로 가야 했다. 하지만 퇴직한 지 2주가 되던 날, 오후가 되어도 퇴직금은 입금되지 않았다. 가게로 전화해 봤지만, 팀장은 입금이 될 거라며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3주가 되던 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가게를 직접 찾아가 점장에게 퇴직금을 입금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점장은 내 말에 기분이 나쁘다며 다짜고짜 화를 냈다. 너무 무례한 행동에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A4 용지 한 장을 꺼내 글을 써 내려갔다.     

『고소장.

신청자 이남호. 피의자 000.

상기인 피의자는 이남호의 퇴직금을 2005년 2월 9일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노동청 감독관에게 고발하겠음.

신청자 이남호.』      


  그 후, 깨끗한 정장을 차려입고 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예전에 남포동에서 수치심 깨트리기 훈련을 떠올리며 가게에 도착했다. 그때의 시간은 저녁 6시였다. 앞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가자 카운터 앞에 점장이 서 있었다.


  점장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고발장을 꺼내 카운터에 힘껏 내려치며 쩌렁쩌렁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까지 퇴직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노동부 감독관에게 고발하겠습니다! 나 이남호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입….”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점장은 급한 손길로 내 옷자락을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남호야, 잠시 얘기 좀 하자. 그래그래, 돈 줄게, 지금 가게에 손님들이 계시잖아. 그래, 주, 주방에서 얘기하자.”


  점장은 나를 급히 주방으로 데려가서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남호야, 미안해. 네가 이렇게까지 힘든 줄 몰랐어. 내가 실수했다. 여기에 입금할 계좌번호 적어줘. 사장님께 당장 말씀드려서 내일까지 입금 처리할게.”

“퇴직금을 점장님이 주시는 것도 아니면서 왜 차일피일 미루셨죠?”

“미안하다. 내가 깜빡했어. 당장 처리해 줄게.”


  다음날 오전 10시경, 퇴직금은 1원의 오차도 없이 오백만 원 전액이 입금되었다. 이 경험은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가장 용기 있는 일이었고, 훗날 이 일이 강사가 되고자 하는 자기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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