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편집부원 신서영, 수습부원 오승주, 수습부원 윤이경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해진 과정이나 결과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결과로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 누구의 기대조차 받지 못했던 선수가,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이를 우리는 흔히 ‘기적’ 또는 ‘언더독의 반란’이라 얘기한다. 그동안 수많은 스포츠 영화에서 언더독의 반란을 스크린에 담았지만 ‘머니볼’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언더독의 반란을 조명했다.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찬란한 수식어 뒤에 감춰져 있던 그들의 노력과 고뇌, 적막과 고독들을 우리는 ‘머니볼’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를 영입해 ‘머니볼 이론’을 바탕으로 구단을 경영해 성공을 거두었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머니볼’은 내용의 바탕이 된 ‘실화’를 영화적 측면에서 적극 활용했다. ‘머니볼’은 오클랜드가 20연승을 달성하기 전 19연승을 달성하는 과정을 실제 메이저리그의 해당 경기 영상과 영화로 찍은 경기 및 관객 장면을 교차편집을 통해 표현했다. 덕분에 ‘머니볼’이 실화를 담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고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머니볼’은 승리의 순간만큼 단장 빌리 빈과 그의 조력자 피터의 노력도 강조하는 편집기술을 많이 활용했다. 롱쇼트로 찍은 피터와 빈의 모습이 같은 구도로 2번 등장하는데 먼저 제시된 장면 속 피터는 야구 중계 방송을 보고 있었으며 빈은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후 2번째로 제시된 장면에서 피터는 ‘머니볼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을 하고 있고 빈은 단장일을 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인다. 같은 구도와 같은 등장인물이지만 등장인물의 행동에 변화를 주어 구단의 성공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노력의 질도 더욱 향상되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또한 그다음 장면에는 WON이 적힌 분석보고서가 클로즈업된다. 이 보고서의 경우에도 이전 장면들에서 보고서에 WON 대신 LOST만 가득 적힌 채로 많이 등장했다. 이를 통해 오클랜드의 승리 횟수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끔 했다. ‘머니볼’ 속에는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영화 촬영 기술 및 편집 기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영화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머니볼은 통계적 분석을 통해 구단을 경영하는 내용의 영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적 측면과 아울러 경영학이나 통계학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프로 선수들은 부상이나 신체 노화 등의 문제로 선수로 생활할 수 있는 평균 기간이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1] 그렇기에 선수들은 이 짧은 선수 생활 동안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의 팀으로 이적을 일반 근로자에 비해 쉽게 결정한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각 구단은 필요한 선수라면 당장에라도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해오려는 쟁탈전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 빌리 빈이 단장으로 있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리그 성적도 좋지 않고, 자금 여력도 소위 경쟁력 없는 팀이다. 리그 성적이 좋지 않으니 팬들이 떠나가면서 자금 여력은 나빠지고, 이에 따라 선수들에게 충분한 연봉을 제공하지 못하며 실력 있는 선수들은 팀을 떠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빌리 빈은 경제학도 피터를 채용하며 통계를 이용한 새로운 선수 선발 방식을 채택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00년대 초반 MLB에서는 타율, 홈런, 도루와 같은 눈에 띄는 역량에 중점을 두어 선수들을 평가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팀의 승률에 필요한 역량은 오히려 ‘출루율과 장타율’과 같은 당시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요소였다. 팀의 승리에 필요한 역량을 통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저평가된 선수를 저렴한 비용으로 데려와 팀을 구성했고, 이러한 머니볼 전략은 성공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일반 기업에도 머니볼 이론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M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워라밸, 보수와 같은 근무 조건에 따라 이직을 관대하게 결정해 현재 취업자 중 절반이 이직자일 정도로 MZ세대의 이직은 기업 입장에서 커다란 골칫거리다.[2] 충분한 연봉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업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은 인재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과거의 인사관리가 사람의 감과 경험에 의해서 운영되었다면, 지금의 인적자원관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에 필요한 역량을 조사하며, 객관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90년대 MLB와 같이 눈에 보이는 요소보다는 실제 기업에 도움이 되는 성과 위주로 인사적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오클랜드와 같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면 저평가된 인재들을 낮은 연봉으로 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통계 숫자 놀음과는 다릅니다. 몸으로 하는 경기니까요.” 영화 내에서 빌리 빈을 비난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미국계 야구계에서는 ‘통계와 데이터’ 보다는 ‘경험과 직관’이 중요시되었다. 직관적으로 야구 선수의 야구 전망을 판단하여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들의 피지컬을 중심으로 선수들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그러나 영화 머니볼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의 단장 빌리 빈과 부단장 피터 브랜드는 기존 방식의 틀을 깨고 ‘통계’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된다. 주요 선수들 3명이 떠난 자리에 통계적으로 가장 적합한 선수를 데려와 공백을 메워 나간다. 그 선수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도, 젊은 나이의 선수도, 부상이 없는 선수도 아닌 단지 출루율을 보고 판단한 결과였다. 여기서 출루율은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베이스에 얼마나 많이 살아나갔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이다. 야구 선수가 볼넷으로 살아나가도 상관없다. 볼넷 또한 출루율을 높여주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타자의 타율, 홈런 개수, 도루 개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계 수치들을 중심으로 선수를 평가하게 되었다.
머니볼에서처럼 야구에서 각종 기록을 통계적, 수학적으로 분석한 후 활용하는 것을 사이버메트릭스라 부른다.[3] 사이버메트릭스 지표 중에서 출루율(OBP)과 장타율(SLG)의 합으로 계산하는 OPS(공격공헌도, On-base Plus Slugging)가 가장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서 출루율을 중요시했던 것처럼 OPS지표는 당시 야구 관점과 달리 느리고 둔해도 장타를 치고 볼넷을 많이 얻는 타자가 득점을 올리는 데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반대로 투수에 대한 지표에서는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Walks plus Hits divided by Innings Pitched)가 가장 유명하다. 이는 투수가 한 이닝당 얼마나 많은 주자를 출루시키는지 나타내는 지표로 1.1 이하이면 특급 투수로 간주한다. 이 두 지표를 통해 야구에서 출루가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다. 영화 머니볼에서는 출루율을 적극 활용하며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영화는 경영학적으로나 통계학적으로나 오늘날의 비즈니스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혁신적인 생각부터 시작해 그 과정을 이루는 치밀한 계산과 전문적인 지식들, 그리고 끝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내는 결과까지. 이 모든 것들은 계속 곱씹어 보아야 할 만큼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의미들 속에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의미도 담겨 있다. 실패와 좌절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나도 누군가의 홈런타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선발투수가 경기의 전부를 이끌지는 않음을 깨닫는 것, 찬사 뒤에는 숨 막히는 노력의 시간이 숨어있다는 것 등 우리는 ‘머니볼’에서 자꾸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만났다. 약 20명의 사람이 공과 방망이를 들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일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고 합리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볼’은 차가운 이성을 통해 그 누구보다 뜨거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차가운 심장도 결국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이기에, 우리는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1] 박정훈,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그들은 얼마나 벌까”, 이코노믹리뷰, 2017.12.06.
[2] 신주희, “MZ세대 취업자 중 ‘’절반”은 이직… 일한만큼 돈 줘야”, 헤럴드경제, 2021.05.02.
[3] 김홍재, 야구는 숫자놀음? “승부를 지배하는 숫자들”, 사이언스타임즈, 2021.05.25
그림 출처 : 영화 '머니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