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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4호 매듭 09화

[경영]쩐의 전쟁, 고려아연과 영풍의 75년 동행의 끝

편집부원 김수연

by 상경논총

2024년 9월 13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그룹과 함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발표하였다. 국내 비철금속계의 절대강자인 영풍과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하는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연간 120만 톤 규모의 아연, 연 등을 비롯한 10여 종의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제련기업이다.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쥐기 위해 필요한 몇 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수조 원의 자금이 투입된 이번 쩐의 전쟁은 단숨에 하반기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길고 복잡한 분쟁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두 기업을 운영하는 장 씨, 최 씨 일가의 75년 공동경영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공동경영의 역사

고려아연의 모회사 영풍그룹은 1949년 황해도 출신의 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창업한 영풍기업사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영풍은 당시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발맞추어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리에 석포제련소를 세우면서 비철금속 제련업에 뛰어들었다. 석포제련소는 아연 광산이 근처에 있고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해 아연 정광과 제련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받기 최적의 입지였다. 하지만 환경 관련 법령에 따라 석포제련소 일대가 청정지역으로 분류되어 낙동강 오염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강했고, 주변도 산지이다 보니 공장 확장에 제약이 많았다. 영풍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자 결국 경남 울산의 온산면에 대규모 비철금속 단지인 온산제련소와 이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을 별도로 설립하게 된다. 온산제련소는 석포제련소가 취급하지 못했던 납 제련이 가능해 아연과 다양한 비철금속을 생산하며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린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창업주 2세대 경영이 시작되고 영풍 경영은 장 씨 가문이, 고려아연 경영은 최 씨 가문이 각각 맡았지만 여전히 양측의 공동경영 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아연, 황산 등 비철금속 제련분야의 원료를 공동으로 사와 제련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였고 그 과정에서 활발하게 공동영업과 인적교류, 정보교류가 이루어졌다. 당시 두 회사는 모두 영풍의 지분을 각각 20% 중반으로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 최 씨 일가가 재무투자 손실 충당 등의 이유로 장 씨 일가에게 보유한 영풍 지분을 팔면서 양측의 지분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영풍은 사실상 장씨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영풍이 가지고 있던 고려아연의 주식도 장 씨 일가의 지분이 되었다. 고려아연의 경영은 최 씨 일가가 하고, 소유는 장 씨 일가가 함으로써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분열의 시작

70년 넘게 이어진 두 가문의 동맹 관계는 2020년대에 들어 고려아연의 창업주 3세 체제가 시작되면서 여러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져 버렸다. 동행에 균열이 생긴 가장 큰 원인은 최근 5년간 급격히 커진 두 기업간의 수익성 격차였다. 2019년부터 지난 5년간 고려아연은 매년 대규모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연평균 영업이익 8756억 원을 기록한 반면 영풍은 두 번의 영업적자로 인해 연평균 영업이익이 약 7억 원에 머물렀고 같은 기간 매출액 격차 또한 2배가 늘어났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제련업에 집중해 해당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과 투자를 지속한 것과 달리 영풍은 제련업과는 무관한 인쇄회로기판 전자산업에 뛰어들면서 본업 경쟁력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 실적 격차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연-아연-동 통합 공정을 구축해 생산성은 향상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취급하는 제품 수도 영풍보다 많고 포트폴리오도 다양해 다양한 고객의 수요에 대응하는 역량을 가지고 이익을 늘릴 수 있었다. 영풍의 낮은 실적은 약화된 본업 경쟁력과 더불어 각종 ESG 경영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의 경우 빈번한 환경오염 및 근로자 안전사고로 조업정지 처분을 받아 가동률이 50% 후반대로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고려아연의 공장 가동률이 100%에 근접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양사 간의 실적 차이는 배당금, 신사업 투자계획, 폐기물 처리 등에 있어서 두 가문의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를 불러일으켰다. 영풍의 2024년 상반기 별도 기준 영업 손실은 약 6억 원이었지만 263억에 해당하는 배당금 수익으로 순이익은 253억 원을 기록했다. 자사의 본업 경쟁력이 악화되었어도 배당 수익을 통해 실적 방어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에게서 받은 배당금을 통해 실적을 개선할 수 있으므로 더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영풍의 배당 확대 요구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지니게 되었다.

고려아연은 늘어난 이익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사업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2022년 새롭게 취임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기존 제련 부문에서 수익률을 극대화하면서도 2차전지, 자원순환, 신재생에너지를 주축으로 트로이카 드라이브 신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대가 변화해 제련업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ESG 요구도 지속적으로 증대됨에 따라 친환경적인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였다. 10조가 넘는 규모의 신사업 투자를 위해서 고려아연은 대규모 차입금이 필요했고 배당도 최대주주인 영풍이 원하는 만큼 늘려줄 수 없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무차입경영 기조를 가지고 있던 영풍 경영진 측은 신사업 투자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고 주주총회에서 높은 지분을 토대로 고려아연의 투자계획을 반대하였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현재에만 안주하면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또한 영풍의 지속적인 폐기물 처리 요구가 기업 갈등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는 입장이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2018년 낙동강 카드뮴 오염 문제로 사회적 지탄을 받자 이듬해 카드뮴 공장을 폐쇄하고 관련 물질을 분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영풍은 온산제련소에 카드뮴 잔재물을 처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고려아연은 2021년부터 약 2년간 석포의 카드뮴 찌거기를 대신 처리하였으나 환경 오염 리스크에 대한 내부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년 만에 중단하였다. 이에 대해 영풍은 현재 카드뮴 케이크는 전량 외부 반출해 처리하고 있고 오히려 고려아연에 보내 처리하는 것은 속도를 지연시키고 추가비용이 더 들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철금속 업계에서는 여전히 영풍이 내년 중으로 폐기물 처리를 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려아연 경영권을 차지하면 유해 폐기물을 더욱 전방위적으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분리의 움직임

고려아연은 2022년부터 2023년 사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처분을 통해 우호 지분을 꾸준히 확보해왔다. 2022년 8월에는 한화그룹 계열사에 지분 4.8%를 제3자배정 방식으로 발행했으며, 2023년 8월에는 현대자동차의 해외 자회사에 지분 5.05%를 발행했다. 이런 움직임은 주요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호 세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자사주도 적극적으로 처분했다.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약 6.02%를 LG화학, 한화, 한국투자증권, 모건스탠리 등에 매각했다. 이로써 최윤범 회장 측은 회사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정적인 지분 구조를 구축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우군들의 지분까지 더하면 최 회장의 우호 지분은 33%대로 당시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과 맞먹는 셈이었다. 이러한 지분 확보 움직임은 영풍에게 경영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영풍은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해 대응에 나섰다. 결국 2022년부터 이어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자사주 매각 전략이 현재 경영권 분쟁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장 씨와 최 씨 가문의 공동 경영을 상징했던 비철금속 해외 유통 및 판매 계열사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본사를 이전하며 독립 경영 체제를 본격화했다. 2024년 6월에 열린 서린상사 임시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측 인사들이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로써 서린상사 이사회는 고려아연의 주도 아래 재편되었고, 고려아연이 최대주주로서 서린상사의 경영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다. 또한 2024년 7월, 본사를 기존의 영풍 본사 건물에서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빌딩으로 이전하면서 영풍과의 물리적인 결별을 선언했다. 45년간 이어져 온 사옥 공유가 종료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인적·물적 교류도 모두 중단했다. 이는 영풍과의 경영 협력 관계를 청산하고, 독립적인 경영 구조를 확립하려는 의도로 보여졌다.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

2023년 9월 13일,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지분 7~14.6%를 1주당 66만 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영풍이었으나, 경영권과 이사회는 최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었다. 영풍그룹의 장씨 가문은 창업주 가문으로서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의결권 기준 과반 이상의 지분 확보를 목표로 했다.

MBK는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2019년 이후의 재무건전성 악화,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손실, 이그니오 홀딩스 깜깜이 투자 등의 이유를 들어 공개매수 진행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사모펀드와 호주 신재생에너지 업체 이그니오 홀딩스에 수천억 원의 자금을 투자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영풍과 MBK는 대규모 투자 손실에 대해 적절한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본업인 아연제련 사업과 무관한 비핵심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회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었다는 비판 또한 제기했다. 영풍과 MBK는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MBK의 전문성을 활용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지역사회, 특히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가 위치한 울산 지역에서는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가기간산업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고려아연 1인 1주식 갖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MBK의 출자금에는 중국 등 여러 국가의 자금이 포함되어 있고 사모펀드의 운용 특성상 인수한 기업을 재매각해 이익을 내는 것에 집중해 세계적인 비철금속 제련기술을 가진 고려아연의 장기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10월에 접어들면서 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앞서 영풍-MBK 연합은 공개매수 기간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 취득을 할 수 없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10월 2일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자본시장법 140조에 따르면 공개 매수 기간에 공개 매수자와 매수자의 특별관계자가 공개 매수 외의 다른 방법으로 지분을 늘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영풍은 자사의 특별 관계자인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법원은 제반사정을 고려했을 때 현재 두 회사가 특별관계자로 묶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2일 고려아연은 곧바로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주주간 계약을 체결해 1주당 83만 원에 전체의 15.5%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한 후 전량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총 2조 6635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공개매수 발표로 차입 상환에 대한 부담과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우려가 뒤따랐다. 영풍은 다시 한번 주주총회를 거쳐 사외유출을 제한한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에서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차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임의적립금을 제외하면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이 약 600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2조 7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영풍의 입장이었지만 법원은 자본시장법과 상법 등 관련 규정에 배당가능이익에서 임의적립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1일 이를 기각하였다. 최초 66만 원으로 시작된 매수가는 수차례의 인상을 거쳐 최종적으로 영풍-MBK의 경우 83만 원, 고려아연의 경우 89만 원까지 올라갔다. 10월 23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까지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공개매수 종료 후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임을 반영했을 때 MBK 측은 최대 42.74%의 지분을, 최윤범 회장 측은 최대 40.27%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지분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고려아연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였다.

10월 30일, 고려아연은 시장을 놀라게 하는 문제의 결정을 내렸다. 발행가액 67만 원, 총액 2.5조 원이라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주주 기반을 확대해 국민기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시장에서는 영풍-MBK 연합의 지분 희석을 위한 결정으로 보았고 유상증자 계획 발표 이후 주가는 하한가까지 급락했다. 주주권익 보호를 위해 자사주를 공개 매수해 소각하겠다고 발표하고 돌연 유통주식 수를 늘리겠다는 점과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모든 청약자는 총 공모주식수의 3%를 초과해 청약할 수 없다는 점, 자사주 공개매수로 발생한 대규모 차입금의 규모가 이번 유상증자 규모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반주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이 공개매수가 끝나기 전에 유상증자를 계획했으면서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고 보아 공개매수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31일 조사에 착수하였다. 이후 11월 6일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에게 유상증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해 즉시 그 효력이 정지되었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시장 안팎으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결국 고려아연은 11월 13일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하고 최윤범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임하였다. 따라서 이번 경영권 분쟁의 향방은 오는 12월 혹은 내년 초에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갈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개매수 종료 이후 양측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임시주총에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와 중간지대의 주주들에 따라 의결권 싸움이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의 시사점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단순한 지분 확보 경쟁을 넘어, 법적 공방, 유상증자를 통한 경영권 방어, 회계처리 적정성 논란 등 다양한 이슈가 복잡하게 얽힌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나 2024년 11월 현재까지 뚜렷한 승자가 없는 상황이다. 다음 임시 주주총회에서 누가 승기를 잡을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나 분명한 것은 양측 모두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여러 리스크를 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의 경우 막대한 자금 투입으로 인해 재무 건전성은 악화되었고 유상증자 결정으로 기업 이미지와 평판을 저해시켜 투자자와 주주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또한 지속되는 경영권 분쟁으로 내부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조직의 혼란이 발생해 장기적으로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의 경영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 내부적으로는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외부적으로는 시장의 부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에 기업 가치와 시장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저해할 위험이 있다.

특히나 이번 경영권 분쟁은 한국 금융시장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현 금융당국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지배구조 투명성 부족, 주주가치 경시, 경영권 프리미엄 등의 문제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공격적인 공개매수로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던 고려아연의 주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주가가 오를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저평가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 경영권 분쟁 테마주가 존재할 만큼 경영권 분쟁은 지분 다툼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 호재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평소 국내 증시가 저평가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시스템 상으로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할 장치와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회사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대주주 지분에 붙는 웃돈인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인해 일반 소액주주는 이중가격으로 차별을 받는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분을 프리미엄을 붙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없어 방치하고 결국 분쟁이 끝나고 주가가 원상태로 돌아가면 일반 주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이번 분쟁의 경우에도 MBK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추후 매각하면 손해가 아니므로 영풍과 연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유상증자 결정으로 주가가 급락해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 것처럼 상법상 일반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규정이 없어 주주가치 훼손이 쉽게 발생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서도 이번 고려아연 사태 이후 주주 충실 의무를 법제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은 주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경영권 다툼의 도구로 주주들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이다.

비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선진적이고 균형 잡힌 자본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책임 있는 경영과 이해관계자들 간의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자본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고려아연과 영풍같은 단순히 특정 기업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임을 이번 경영권 분쟁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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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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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김민지, “[그래픽]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일지”, 연합뉴스,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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