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튤립
올해는 유독 ‘시작’이 많은 해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곱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신촌캠퍼스를 거닐고, 처음으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동아리, 학회 등 많은 활동도 정상화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관계는 늘 낯선 느낌과 함께 시작된다. 다가가기 조심스럽고, 말을 걸기도 어렵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질문과 과장된 리액션, 그리고 중간중간 찾아오는 시간이 무한대처럼 느껴지는 정적의 순간들. 이따금 찾아오는 정적은 방금까지 웃고 떠든 것이 무색하게 서로 아직 낯선 사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렇지만 관계의 시작은 조금 낯선 편이 좋다. 아직은 서먹서먹한 사이인 사람들이 낯설다는 느낌을 한 편에 접어둔 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뱉을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고, 어떤 말은 속으로 삼킨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첫 만남을 회상할 때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다가가던 나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다가온 상대방의 모습을 “그땐 그랬지”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시작에 낯섦이라는 벽이 자리 잡고 있다면 어떤 사람은 벽을 두고 돌아서고 어떤 사람은 벽을 두드리며 들어온다. 그래서 그 벽을 넘어 나를 겪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더욱 감격하게 되는 건 아닐까.
관계의 시작에서 온전하지 않을지라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솔직하지 못한 관계는 모래사장 위에 지은 집처럼 위태롭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호의를 보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사람으로 인해 다시 한번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관계의 시작은 참 어렵다. 처음은 실수가 동반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마음,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이 관계의 시작을 방해한다. 완벽해지고 싶은 욕망을 애써 외면하고 덜 다듬어지고 조금은 투박한 나 자신을 조심스레 세상에 꺼내놓는 것에서부터 관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