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냐리
대기만성(大器晩成)은 제가 참 좋아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대기만성이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라도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를 제가 좋아한다는 것이 얼핏 야망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대기만성이라는 말은 저에게 다른 이유로 참 소중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가 중 하나인 조셉 콘래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둠의 심연』을 비롯해 『로드 짐』, 『비밀 요원』등의 영문학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조셉 콘래드는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폴란드 출신의 소설가입니다. 조셉 콘래드는 폴란드에서 출생하였는데,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조셉 콘래드의 아버지는 문학가로 활동하며 폴란드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는데, 아버지의 독립 운동 활동 탓에 콘래드는 어릴 지하 벙커에서 숨어 살며 안정적이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는 부모님을 피난길에 모두 잃어 고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콘래드에게 전란 속에서도 폴란드의 시를 암송시키며 문학적 소양을 불어넣어주었던 아버지 덕에 콘래드는 폴란드어 교육을 잘 받은 상태였고, 폴란드 문학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 콘래드는 외삼촌에게 입양되었으나, 넉넉치 못한 외삼촌의 형편과 질풍노도의 시기로 인해 열여섯 살의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원이 되라는 외삼촌의 추천으로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으며 항해와 모험을 꿈꿔왔던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로 떠나 선원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콘래드는 프랑스에서 4년을 수습 선원으로서 보내게 되는데, 러시아 국민이라는 이유로 항해를 허락받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그는 꿈꿔왔던 항해를 할 수 없게 된 현실에 크게 좌절하며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도박에 재산을 탕진하여 큰 빚을 지게 되고, 급기야 스무 살에는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때 다행히도 콘래드의 빚을 그의 외삼촌이 갚아주며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콘래드가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되고 콘래드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이동해 선원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합니다. 콘래드는 영국의 상선에서 장기간 생활하며 문학 작품도 꾸준히 읽었고, 견습생에서 시작하였던 그는 30대에는 선장까지 하게 됩니다. 선장이 된 그는 모리셔스 등 여러 나라들로 항해를 떠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이별도 경험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영국에 돌아와서는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37살에는 통풍이 심해져 항해를 그만두고 소설가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콘래드는 1년에 한 권씩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칩니다. 그리고 40세가 된 해에는 사랑하는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콘래드는 이후 56세가 되어서야 첫 베스트셀러 『찬스』를 출판했고, 62세가 되어서야 영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해지게 되었습니다. 콘래드는 4년 뒤 66세의 나이로 20여 권의 영어 소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데, 그는 현재까지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문 소설들을 남긴 대문호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조셉 콘래드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 어떤 것도 제 때에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였고,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항해를 해 보겠다고 프랑스에 가서도 그는 방황하며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서야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후 17년간 선원으로 생활하다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훗날 자신이 유명세를 떨칠 영어 소설 출판을 뒤늦게 시작하게 됩니다. 게다가 40살에 결혼이라니, 초혼 연령이 점차 높아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해보아도 놀랄 일입니다. 문인으로서 명성을 떨친 것도 60대 때 부터라니 정말 늦은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조셉 콘래드를 미련한 인간으로 보며 한심하다고 비웃지 않습니다. 그가 결과적으로 영문학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큰 그릇이 늦게 이루어졌을 뿐인 것이죠.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xx 살이면 취업해야지, 결혼해야지...’라는 틀에 맞게 사려고 발버둥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모두가 한 틀에 맞추어 사는게 불가능한데, 우리는 자꾸만 스스로를 사회의 틀에 끼워맞추려 노력하고 그 틀에 들어가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조셉 콘래드가 대기만성한 이유는 어쩌면 그가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고 어린 시절부터 마음이 가는 대로 과감하게 도전적인 모험을 행했던 의연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마음인가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스스로를 주변인들과 비교하니 혼자 뒤쳐지는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인가요? 그렇다면 제가 오늘 들려드린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하며 마음의 조급함을 가라앉히고, 의연하게 마음이 가는 일들을 소신 있게 행하며 살아보세요.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는 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