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겨울(上)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어느 사람이든 삶에 접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스스로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덕분인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과거를 다시 되짚었다.
기억 속에는 어떤 장소가 있다. 무색의 향이 흐르는 차가운 로비, 대리석으로 가득 찬 벽과 바닥, 이따금 책을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어떤 장소에 서 있는 나는 유유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번뇌에 빠진다. 만약 감정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주무를 수 있는 형태였다면 사람들은 감정에 휩쓸려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마구 조종한다.
나는 사람이 감정에 휩쓸려 살아가는 곳을 아주 잘 안다. 그곳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사람들이 자신을 실패작이라 정의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또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침울에 빠져있고, 웃음을 잃은 채로 펜을 굴린다. 다시 말하자면 그곳은, 인생의 첫 전환점에서 실패를 맛본 N수생들이 드글드글 모여있는 곳이다.
쌤은 그곳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사람이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칼은 부스스 갈라졌고 키는 백 칠십 언저리였던 ‘쌤’. 우리의 생활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담임 선생님이었던 ‘쌤’은 스무 명의 학생 개개인의 성격을 전부 달달 외우고 있던 사람이었다. 학원 생활 전반에 있어서, 또는 모의고사 상담을 할 때마다 쌤은 학생의 성격에 맞춰 말투를 바꿨고, 성격을 바꿨고, 예시조차도 바꿔 말했다. 덕분에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쓰는 그를 보고 어떤 학생들은 소름이 돋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쌤의 정성 어린 맞춤식 인간관계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나만큼의 호의를 가진 학생이 몇몇만 있었다면 쌤은 힘겨운 학원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었다.
그러나 학원은 작았다. 고작 일 년의 시간 동안 쌤을 평가하는 말들은 여기저기서 나돌았다. 하루는 쌤의 뒷담화를 목격한 다른 반 선생님이 아이들의 모욕적인 말을 당사자에게 전달해주기도 했다. 어떤 의도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마다 속으로 화를 내는 일뿐이었다.
모두가 주어진 단체복을 입었다. 검정색 후드티에 후줄근한 운동복 긴바지. 여름철에도 반바지는 금지되어 있었고 색깔은 모두 탁한 검정으로 통일이었다. 얼굴로만 사람을 구분해야 했다. 우리는 단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해야 했으므로 몸으로 말할 수 없었다.
모두가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쌤을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차가운 경쟁이 가득한 학원 안에서 쌤을 위해 화를 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의 진실된 목표는 결국 대학이었고, 쌤의 언행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고된 재수 생활을 견디게 하는 밑반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 등을 돌리면 최악의 적이 된다고 했던가. 쌤의 맞춤형 인간관계에 질렸던 학생들은 소문을 만들어내는 일로도 모자라 일 년 내내 쌤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모의고사 상담 기간 동안 쌤과 우리의 상담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짧아진 상담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어느 순간부터 쌤은 학생들에게 안부를 묻지 않았다. 덕분인지 쌤에 대한 평가와 이야기는 상담 시간과 꼭 같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재미가 사라지자 다른 선생님으로 타깃을 변경하기도 했으며, 그때마다 사상자는 점점 늘어나곤 했다.
정말 언젠가부터 쌤은 말을 끊었다. 애초에 쌤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그 비밀에는 사는 곳도, 대학도, 나이조차도 포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지독한 맞춤형 인간관계였다. 그런 그의 방식이 철저히 냉정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우리의 진실한 목표는 대학 하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