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47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쉼 없이 돌아가는 시계 초침을 붙잡고 싶은 그동안이었다면, 그 초침을 마구 돌리고픈 충동이 종일 방망이질 하였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아라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밤은 깊었으나 아직 오늘의 안에 있었다. 분명, 길었던 하루였으나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쏴- 샤워기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긴 아라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오늘을 흘려보내기라도 하듯 말이다.

"모나리자가 미인인 건가? 눈썹이 있고 없고가 이렇게 중요한 거였다니."

젖은 머리에 대충 수건을 걸치고 욕실 문을 연 그 순간이었다. 장승같은 진호의 모습이 아라의 두 눈에 아로새겨졌다. 반갑지 않은 등장,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이에 신경질적으로 진호를 밀치고 아라는 쿵쿵- 소리를 내며 걸었다.

"옥상에서 맥주 한잔 합시다. 이미 보았으니 애써 그리지 말고."

말끝에 아라의 눈썹을 꼭 짚은 진호는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참다못한 아라가 젖은 머리카락을 덮고 있던 수건을 던지려 하자, 그는 방향을 틀어 주방 쪽으로 피했다. 방금 전까지 진호가 있었던, 텅 빈 곳을 향했던 시선을 추스르고 욕실로 향한 아라는 세면대 위, 벽에 고정된 큼지막한 거울에 자신을 비췄다. 익숙한 모습이라 그런지 봐줄 만은 했다. 물론, 별 뜻이 없는 말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재차 곱씹으며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막 옥상에 발을 디딘 아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칠흑 같은 밤의 자태 아닌 엉거주춤 걷고 있는 진호였다. 뒷짐을 지고 뒤뚱뒤뚱 걷는 것이 트집을 잡기 딱 좋은 모양새라 아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잠자리에 운동은 무슨."

"기다리다 보니 맥주가 식길래 몸을 좀 덥히고 있었지."

작은 새가 빠르게 날개를 치듯, 진호는 곧게 뻗은 손을 파닥이며 아라를 끌어당겼다. 맥주 캔 하나를 아라에게 건네고는, 목이 탔는지 벌컥- 들이켰다. 위아래로 심히 요동치는 진호의 목울대에 아라는 시선을 고정했다. 제 소임을 다한 빈 캔이 그의 손아귀 힘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것을 본 아라는 제 것을 내밀었다.

"정량이야. 이런 날은 술 한잔이 절실하지."

"이런 날?"

"못 볼 것을 본 날.."

말끝을 슬쩍 뭉개며 진호는 아라의 눈치를 살폈다. 채 넘기지 못한 맥주로 인해 아라의 양볼은 빵빵하게 부풀어있었다. 미적지근하고 끈끈한 것이 제 차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피로 회복제일 테니 쭉 들이켜."

멀리 있는 밤하늘을 휙- 둘러본 진호가 웃음을 흘렸다. 살펴봐도 온통 먹색뿐이고, 작은 별 하나 찾기 힘든데도, 뭐 그리 재밌는지 웃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기를 얼마, 자신을 빤히 보는 아라의 시선에 급히 웃음을 멈췄다.

"실은, 에어비앤비 궁금했거든."

"안 불편하겠어? 잠자리 말이야. 나로 인해 바뀐 거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옥탑방은 햇빛 빨아들이는 스펀지라 덥고 불편할 거라며 선뜻 당신 방을 내줬잖아.

날개가 없을 뿐 알프레도는 천사가 확실해!!"

"그럴지도. 그렇다고 덮어놓고 알프레도 편을 드는 건 아냐. 싱거운 누구처럼."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안부가 먼저라니. 공짜로 재워준 보람도 없게."

쯧쯧- 진호가 대차게 혀끝을 찼다.

"진즉에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표했고, 이번엔 동거인 차례. 오늘 고마웠어."

"아시시에서 고아라 마음이 이랬겠구나. 오늘에서야 알았어."

"좋은 아빠 되겠네. 난 엄마 마음이었거든."

"고아라는,, 거짓말도 참 성의 없게 하네."

빛은 자연과 사물을 무심히 건드려 맘껏 스스로를 발산하게 하고, 어둠은 자연과 사물을 한껏 삼켜 제 테두리 안에 가둔다. 흐르지 못한 공기의 흐름, 종종 대는 별의 움직임, 방황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해진, 밤의 정적은 무겁고 탁했다. 화려한 낮의 색을 잃어버려 가진 것이라고는 시커먼 어둠뿐이었지만, 감출 수 없는 그 묵직함은 외려 묘했다.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을 토해내는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잡은 물고기를 흥정하는, 낚싯줄을 정리하는, 바닷가 마을의 흔한 광경이려니 했는데 웬걸,,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터의 원주인인 어부와 물고기들은 정작 뒷전이었다. 흐드러진 벚꽃 같은 상인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어업보다는 관광업이 노다지인 듯했다. '신이 당신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은 이유는 포지타노를 보게 하려 함이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여행을 종용하는 글귀가 스치고 지나갔다. 해안 절벽 마을이 비단 이곳 만은 아니고, 수많은 절경 중 그저 하나일 뿐인데도 거리며, 상점이며, 심지어 골목까지 차별을 두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풍경보다는 사람 구경이 먼저겠구나 싶었다. 5월의 끝자락, 절기상 본격적인 휴가철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 포지타노에선 계절도, 절기도 하나같이 무색했다. 항구에 서서 올려다보는 시선에 걸려든 건물들은 층층이 쌓아 올린 색색의 종이 성냥갑만 같아, 작은 바람에도 여차하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끊일 줄 모르는 사람들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왜곡된 이야기라며 그는 성경을 폄하했고, 그런 그를 폄하했었는데."

"좋은 말씀 전하러 온 거면 노크가 먼저야."

"첫째 날은 빛과 어둠을, 둘째 날은 땅과 물을, 셋째 날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넷째 날은 달과 별 그리고 낮과 밤을, 다섯째 날은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땅에 기는 가축을, 그리고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에 움직이는 것들을 다스리라 명하신 후,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며 여섯째 날에 심히 좋았더라고 창세기 1장은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앞선 둘째 날이었던 거지. 넘실거리는 그 푸른 물결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았던 터라, 한 뼘만 한 뼘만 했던 것이 결국 땅의 영역을 침범한 거지. 그러나 새도, 나무도, 꽃들도, 사람들까지도 이렇다 할 말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어. 쏟아지는 폭우는 견딜만했지만, 거센 풍랑은 조금 다른 문제였지. 안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은 바닷가를 등지고 절벽으로 향했지.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불평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 위로, 다른 이의 흔적이 보태어지고, 추억이 덧대어져지다 보니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거고."

"더는 놀랍지도 않아.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반해 척박한 땅을 허락한 신, 이에 불평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 절대적 힘 앞에 능동적 순종이 없었다면 지금의 포지타노는 없었을 거야."

"떠나 보니 알겠더라. 애국심에 이어 신앙심마저도.. 뭐 그런 건가?"

쉬이 벌어지는 아라의 두 입술과는 달리 자칫 심각해질 주제였다. 머리 위 만장 같은 푸른 하늘이 '예끼 이놈' 호통을 칠 것만 같아, 진호는 서둘러 분위기를 돌리려 했다.

"아말피도 이럴까?"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큰 잘못했네."

"유네스코도 한몫했지."

호기롭게 돌진한 파도가 철썩- 소리를 내며 백사장에 부딪쳤고, 햇빛에 반사된 작은 포말들로 인해 눈이 부셨다. 첨벙-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고 그들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갔다.


포지타노 시가지 내, 해발 약 80m의 작은 해안 분지의 암벽 내부에 위치해 있는 그로타 라 포르타(Grotta La Porta)는 막힌 구멍의 형태가 아닌 얕고 긴 암석 사이에 난 뚫린 구멍의 형태이다. 1956년 그로타 라 포르타(Grotta La Porta) 내부 발굴을 통해 고고학자 Antonio Mario Radmilli와 Ettore Tongiorgi는 당시의 선사 시대 전문가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중석기 시대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함과 동시에 포지타노에서 최초의 인간 생활의 흔적을 발견해 냈다. 고대 인류 집단과 선사 시대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동굴의 내부와 표면을 조사한 결과, 회수한 뼈 조각을 통해 고대 인류 집단의 사냥 관행이 주로 아이벡스 및 멧돼지와 같은 종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과, 해양 및 산악 환경을 활용하여 해양 및 육상 연체동물을 채집했다는 증거들을 발견했다. 여기에 수집한 데이터까지 보태어,, 홍적세 말과 홀로세 시작 사이로 추정되는 즉, 고고학적 관점에서 후기 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시대의 끝과 일치하는,, 중석기 시대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1956년 그로

타 라 포르타 동굴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자료 중 일부는 분실된 상태로, 남은 뼈 조각, 해양 조개, 화석, 연체동물의 껍질, 동물의 머리가 조각된 조약돌 등은 로마의 루이지 피고리니 선사민족지학 박물관과 피사대학교 고대과학과로 보내져, 이를 토대로 한 연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용 가능한 고고학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좁혀지지 않은 이견으로 학자들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이탈리아의 중석기 시대, 연대순으로 약 13,000년에서 10,000년 사이 포지타노에서의 인간 생활의 흔적을 그로타 라 포르타(Grotta La Porta)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포지타노라 이름 붙여진 것은 언제였을까? 혹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하며 지중해에서 그리스가 확장하던 시기였다 한다. 그렇다면 포지타노는 어떻게 알려졌을까? 로마 제국의 2대 황제라는 직함 보다 폭군으로 익히 알려진 티베리우스가 로마인들의 증오를 피해 카프리로 피신했을 당시, 자신의 하인들을 보내 빵을 만들 밀가루를 비축하게 명했는데, 정작 그가 이곳의 밀가루를 싫어해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포지타노 해안에 호화로운 빌라를 지었는데, 그 유적은 산타마리아 아순타 성당 근처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고, 대략 9세기 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지타노는 4-11세기까지 아말피 공화국의 일부였으며, 10세기에는 특히 베니스와 경쟁할 만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6세기에 아말피 해안 전체에 흑사평이 퍼졌고, 지중해 전역을 휩쓸던 사라센에 의해 약탈마저 빈번해지자, 총독 피에트로 다 폴레도는 망루 건설에 박차를 가했고, 16세기 후반 sponda, Trasita 및 Fornillo 타워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터키 황제 슐레이만 2세가 이끈 군대의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668년 스스로를 '왕실의 도시'라 선언하고 키프로스, 그리스와의 무역을 통해 지중해 항구로까지 교역을 확대했다. 그로 인해 당시 그리스에서 유행했던 바로크 양식이 자연스레 흡수되어 포지타노의 주택 건축에 영향을 끼쳤다.

15-17세기까지 부유한 항구였던 포지타노는 19세기 중반에 어려운 시기에 봉착하게 된다. 빠르고 진보한 선박 기술이 없었던 원주민들은 미국으로 향했고, 이주 현상의 본격화는 노동자의 손실과 인구의 쇠퇴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노동력의 손실과 인구의 감소는 결국 가난한 어촌 마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때 한적했던 항구는 1953년 5월 이후, 다시금 활기를 찾게 된다.


'포지타노는 깊은 맛을 낸다. 거기 있을 때는 현실이 아니었지만 가고 나면 손짓하는 듯한 현실이 되는 꿈의 장소입니다.'


그것은, 미국 월간 잡지에 게재된 John Steinbeck의 에세이를 접한 독자들에 의해서였다. 여기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포지타노의 기후, 풍경,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에 매료된 화가, 감독, 작가들이 이곳의 오두막, 수녀원을 개조하여 호화로운 빌라를 지은 것이 밑거름이 되어 미지의 땅, 환상의 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포지타노에서의 인간 생활의 최초의 흔적은 중석기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현시점에서 볼 때 그 역사나 기원은 결코 등한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먼저여야 하는 것은 분명 하나, 약속이라도 한 듯 여행책 대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내지르는 탄성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포지타노를 직접 보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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